영화 한 편을 디스크 한 장에 통째로 담을 수 있어 ‘꿈의 미디어’라 불리던 DVD플레이어가 보급 10여 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1979년 영국 밴드 ‘버글스’가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고 한탄한 지 약 30년 뒤 이번엔 인터넷이 비디오의 후예인 DVD를 위협하고 있다.
26일 발표된 미국의 유명 DVD 대여업체 ‘넷플릭스’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는 2176만 명으로 9월 말보다 22만 명 늘었다. 반면 오프라인으로 DVD를 빌리는 회원은 1117만 명으로 9월 말(1393만 명)보다 20%가량 급감했다. 스마트TV나 태블릿PC 등을 이용해 인터넷으로 영화를 전송받아 보는 고객이 DVD를 빌려보는 회원보다 2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넷플릭스는 1998년 연체료 없이 월정액을 받고 DVD를 집으로 배달해주는 새로운 형식의 렌털 사업을 선보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존의 오프라인 렌털 공룡이었던 ‘블록버스터’를 쓰러뜨리고 DVD 대여 업계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넷플릭스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자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며 적극적으로 변신했다.
최근 시장조사기업 샌드바인에 따르면 북미의 인터넷 트래픽 집계에서 넷플릭스는 29.7%를 차지해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11%)와 파일공유 사이트인 비트토런트(10%) 등을 크게 앞지르고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DVD 시장이 빠르게 몰락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아가고 있다. 국내 대형 DVD 대여점인 ‘영화마을’의 전국 가맹점은 2005년 970개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4분의 1 수준인 200여 개로 떨어졌다.
DVD 플레이어 제조사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전자업체들은 “수치가 공개되면 해당 사업부 임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DVD 플레이어 판매 추이를 밝히길 거부했다.
고화질 대용량으로 ‘차세대 DVD’로 불리는 ‘블루레이’도 HD-DVD를 제치고 2008년 이후 업계 표준이 됐지만 표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블루레이 홈시어터의 시장 규모는 약 2조2400억 원에 불과하다. 15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TV 시장의 1.3% 수준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인터넷 속도가 5배 가까이 빠른데도 합법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미국에 비하면 아직 초기 단계다. 사설 웹하드 등을 활용한 불법 복제 및 다운로드가 워낙 활개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합법적인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1개 주요 영화업체의 2010년 매출을 분석한 결과 극장 상영을 제외한 영화부가시장(총 541억 원)에서 인터넷(IP)TV가 341억 원으로 전체의 63.1%를 차지했고 주문형비디오(VOD)가 135억 원(25.2%)으로 뒤를 이었다. DVD와 블루레이, 비디오테이프(VHS) 등은 63억 원으로 11.7%에 그쳤다. IPTV와 VOD 등 인터넷을 이용해 영화를 보는 것이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마트TV,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가 보급되면서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기기로 즐기는 ‘N스크린’ 등과 이를 지원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및 커넥티드 서비스가 발전하면서 영화 등 콘텐츠 소비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스트리밍 서비스::
음악이나 영상 콘텐츠를 파일 형태로 내려받아 저장하지 않고 스마트TV나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에서 곧바로 재생하는 서비스. 다운로드 방식과 달리 파일을 내려받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파일을 다른 기기로 옮기거나 공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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