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을 찾는 환자의 대대수가 “비만은 많이 먹고 덜 움직이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한다. 비만의 원인을 이런 식으로만 보면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면 비만을 해결할 수 있다. 결국 비만 해결은 개인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상식에 가깝다.
다만 예외가 있다. 고도비만은 보통의 비만과는 원인도 다르고 치료법도 다르다. 고도비만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데 일반적인 다이어트나 식이조절로는 개선이 어렵다. 그런 까닭에 개인의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한 고도비만도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진료실을 찾아온 한 여성은 결혼 초 남편과 시댁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첫째 아이를 임신한 후 임신중독증에 걸렸다고 했다. 먹는 양에 비해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살이 찌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째 아이를 낳은 뒤 살이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둘째를 임신했는데, 첫째 때보다 더 심한 임신중독증이 나타났다. 고도비만에 시력까지 나빠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 학교에 다니는 환자의 아이들은 반 친구들로부터 “너희 엄마 뚱뚱하지”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뚱뚱한 환자와 같이 다니는 걸 창피하게 생각해 함께 외출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눈치도 줬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환자는 집에 혼자 남아 양푼에다 밥을 비벼 울면서 먹었다고 한다. 환자의 체중이 더 늘자 척추협착증도 생겼다. 걷기가 힘들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기까지 했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해 고도비만이 된 환자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잘못된 비만 상식 때문에 병을 방치하거나 올바르지 않은 치료에 의존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수술로 비만을 치료한다는 점을 생소하게 느끼고 있었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한 고도비만은 매우 위험하다. 출산에 의한 합병증과 사망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고도비만 임신부에서는 영양분 과다 공급에 의해 거대 태아증이 많이 발견되고, 기계를 이용한 유도 분만이나, 제왕절개 확률도 높다. 고도비만 산모가 출산한 태아도 출생 직후 바로 중환자실로 가는 경우가 많다.
최근 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가임기 여성 가운데 체질량지수(BMI)가 30이 넘는 비율이 33%, 40이 넘는 고도비만 비율이 7%로 조사됐다. 고도비만 여성이 임신 전에 비만수술을 받아 체중을 줄이면 임신 후 산모와 태아의 합병증이 줄어든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한국에서도 고도비만 환자에게 외과적 방법인 수술치료를 널리 쓸 때가 됐다. 최근 의료기술과 기기의 발달로 예전에 비해 수술 안전성이 높아졌다. 고도비만 수술에는 위의 용적을 줄여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 위밴드 수술, 음식 흡수를 제한하는 위우회술 등이 있는데, 모두 복강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흉터가 거의 없고 빨리 퇴원할 수 있다. 이런 수술은 고도비만 여성이 태아와 안전한 세상을 맞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안타까운 점은, 아직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고가의 진료비를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의 배려를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