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만을 사이에 두고 각각 동서에 위치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 두 대학은 100년 넘게 선의의 경쟁을 해온 ‘맞수’다. 특히 두 대학은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세계 수준을 자랑하며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각각 22명과 27명 배출했다. 자존심 대결은 물리학의 상징인 가속기에서도 치열하다. UC버클리는 세계 최초의 가속기를, 스탠퍼드대는 세계 최신(最新)의 가속기를 보유하고 있다. ○ 가속기의 원조, UC버클리
ALS는 둘레가 약 200m인 원형가속기로 원형지붕(돔) 건물 안에 놓여 있다.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제공UC버클리 캠퍼스 언덕 중턱의 흙색 원형지붕(돔) 건물 안에는 미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운영하는 방사광가속기 ‘ALS(Advanced Light Source)’가 있다. 1929년 UC버클리 교수였던 어니스트 로런스가 세계 최초로 만든 원형가속기가 가운데 위치하며 둘레가 약 200m인 ALS가 감싸고 있다.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1950년대부터 원형 가속기를 이용해서 ‘칼리포르늄’ ‘버클륨’ ‘로렌슘’ 등 연구소의 이름을 딴 새로운 원소 6종을 발견해 주기율표에 올렸다. 1954년 당시 세계 최대 에너지인 10억 전자볼트로 양성자를 가속시키는 ‘베바트론’을 가동한 뒤에도 노벨상 수상자를 4명이나 배출하는 등 명성을 날렸다.
1993년 베바트론 가동이 중지되면서 ALS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ALS는 머리카락 굵기의 전자빔을 거의 빛의 속도로 빙빙 돌리는데, 이때 전자는 태양보다 10억 배 밝은 X선을 뿜어낸다. X선으로 우리 몸속을 촬영하듯 ALS는 매우 밝은 X선으로 단백질, 세포 등 생체분자를 3차원으로 찍는다.
1990년대에는 이런 성능을 갖춘 방사광가속기가 없었다. 세계 과학자들이 ALS에서 실험하기 위해 UC버클리로 몰려들었으며 20년이 다 된 지금도 인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ALS 가동 시간은 5842.6시간. 1년 중 약 243일 동안 가속기가 돌았다. 2005년부터 논문에 인용된 횟수는 3100회가 넘는다.
베네딕트 파인버그 ALS 부소장은 “가속기는 많은 자본과 시간이 투입되는 만큼 지어진 뒤에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ALS는 세계에서 찾아오는 과학자들이 좋은 실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 신흥 가속기 명문 노리는 스탠퍼드대
LCLS는 1km에 이르며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는 세계 최초로 2009년 가동을 시작했다.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 제공ALS가 ‘원조 가속기’의 전통을 잇는다면 스탠퍼드대의 ‘LCLS(Linac Coherent Light Source)’는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선두주자다. ALS가 3세대 방사광가속기라면 LCLS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 속한다. LCLS는 스탠퍼드대 캠퍼스에서 약 2km 떨어진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SLAC) 안에 있으며 2009년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는 처음 가동을 시작했다.
LCLS는 ALS와 달리 가속기 모양이 선형이며 현존 가속기 가운데 가장 밝고 빠른 빛을 만들어낸다. ALS보다 10억 배 밝은 빛을 1000조분의 1초마다 만들어낼 수 있다. LCLS에서 나오는 X선은 워낙 빨라 세포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동한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LCLS로 원자와 바이러스의 구조를 관찰한 논문은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적 과학저널에 등재됐다. 우베 베르크만 LCLS 부소장은 “LCLS는 단백질, 분자 등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생체물질의 구조를 새롭게 발견해 생물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 것”이라면서 “스탠퍼드대의 노벨상 수상자를 늘리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대는 4000억 원 규모의 LCLS-Ⅱ 건설도 추진 중이어서 당분간 4세대 방사광가속기 선두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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