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 原電… ‘블랙아웃 사고’ 한달 숨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고리1호기 지난달 9일 12분간 전원 끊겨
어제 뒤늦게 가동정지… 조직적 은폐 의혹

국내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고리원자력본부가 고리원전 1호기에서 12분간 전원이 완전히 끊기는 ‘블랙아웃’이 발생한 사실을 한 달여 동안 숨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부터 가동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이다.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달 9일 오후 8시 34분부터 8시 46분까지 12분 동안 계획예방정비 중인 고리 1호기의 전원 공급이 중단됐다는 사실을 한 달여가 지난 이달 12일에야 늑장 보고했다.

[채널A 영상]노심이 녹아내릴 수도…아찔했던 ‘12분’

이번 사고는 6일 고리원자력본부장과 고리1발전소장 신임 인사를 맞아 지역 의회 의원이 “전원 중단 사고가 있었는데 알고 있느냐”고 문의해 신임 본부장이 뒤늦게 안전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됐다. 이 때문에 고리 1호기를 운영하는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사고를 은폐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고리 1호기 운영을 맡고 있는 한수원은 지식경제부 소속이기는 하지만 원전 안전관리 분야에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안전위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안전 관련 사고 발생 15분 내에 안전위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문병위 사고 당시 고리1발전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왜 보고를 안 했느냐”고 묻자 “드릴 말씀이 없다. 당시 고리 1호기를 안전하게 잘 돌려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컸다. 죄송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 실수로 내부 차단기 한꺼번에 작동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한수원은 우선 발전기용 보호계전기(비상시 발전기 보호를 위해 전력을 차단하는 기기)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내부 차단기 3개 중 2개를 한꺼번에 작동시켜 내·외부 전원이 끊겼다고 밝혔다. 보호계전기는 내부 차단기가 2개 이상 작동하면 전원을 바로 차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한수원 정비 규정에 따르면 외부 전원이 차단되지 않도록 차단기를 하나씩만 테스트하도록 돼 있다.

이어 내·외부 전원이 모두 끊기면 바로 돌아가야 하는 비상디젤발전기조차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한수원 측은 “한 달 전 해당 비상발전기를 점검했을 때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갑자기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당시 한수원은 외부 전원을 급하게 수동으로 연결시키느라 12분을 소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발생한 시기는 핵연료 교체를 위해 발전소를 정지시키고 각종 기기를 점검·보수하는 계획예방정비 기간(2월 4일∼3월 4일)이었다. 사고 당시에는 핵연료 교체 전으로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 냉각수가 채워져 있었지만 정전이 된 뒤 남은 열을 제거하기 위한 냉각설비가 작동을 멈췄다. 만약 원자로가 정상 운전 중에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해 수천 도에 이르는 원자로의 잔열 제거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채로 1, 2시간이 지나면 노심이 녹아내리는 중대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 안전위 “심각한 도덕적 해이 상황”


안전위 고위 관계자는 “사고 직후 15분 내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바로 보고하지 않고 한 달 동안 쉬쉬했다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 상황”이라며 “자세한 현장 조사를 진행한 뒤 원자력 관계 법령에 따라 관계자 처벌을 포함해 여러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를 위해 고리 1호기는 12일 오후 10시부터 출력 감소에 들어가 13일 오후 10시경 완전 정지됐다. 안전위와 한수원 조사팀은 이날 오후부터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한 원전 안전 전문가는 “원자로 운전 정지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원전 내 전원이 완전 사라진다고 해서 바로 위험한 상태로 간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특히 국내 원전 하드웨어는 전원 차단에 대비해 여러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며 “원전 전원 상실 후 후속조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일본 언론 민감하게 반응


일본 언론은 한국의 고리원전 1호기가 외부 전원이 끊기고 비상발전기도 작동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1개월이나 숨겨 왔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도쿄신문은 13일자 석간 1면에 ‘고리원전 모든 전원 상실, 1개월 은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리원전의 모든 전원이 끊겨 원전 냉각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원자력안전법은 사고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정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1개월 넘게 숨겨 왔다”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고리 1호기는 1978년 한국에서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노후 원전으로 2007년에 설계수명(30년)이 끝났음에도 10년간 연장 운전을 결정했다”며 “원전에서 일본 후쿠오카(福岡)까지 거리는 200km”라고 강조했다.

교도통신도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발표를 긴급기사로 타전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본 언론이 이처럼 비중 있게 보도한 것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폭발 사고도 전원 상실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원전 수출 경쟁국인 한국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용하 동아사이언스 기자 edmondy@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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