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수의대 강수경 교수의 논문이 사진 중복 게재로 국제적인 학술지로부터 취소된 것은 익명의 제보자가 국제 학술지 편집위원에게 e메일을 보낸 데서 시작됐다. 통상적인 경우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 이의를 제기할 때는 학회지의 공식 창구를 통하지만 이번에는 학회장의 개인 e메일로 제보가 갔다.
이달 초 이화여대에서도 유명 교수의 논문과 관련해 공식적인 소명 절차가 아니라 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가로채기 논란’이 벌어졌다.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남구현 교수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대해 연구에 참여했던 한 연구자가 공개 게시판에 ‘대학원생은 노예인가? 교수가 연구 결과 독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것이다. 남 교수는 나노 구조물을 이용해 균열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이 논문이 네이처 표지를 장식했다.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두 건의 논란 모두 비정상적인 ‘우회로’를 통한 내부고발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과학계의 고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관에 직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신분이 드러나 불이익을 받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제보를 전담하는 제3의 외부기관을 만들어 학계의 자정(自淨)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통 대학이나 연구소는 연구부정행위 제보를 위한 접수창구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 7월 26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제정한 ‘연구윤리 확보 및 부정행위 방지에 관한 규칙’에도 이 같은 기관을 설치하도록 명시했다. 대학에서는 산학협력단이나 연구처가 이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고발 절차를 통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선 연구부정행위를 담당하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사 담당자를 찾는다고 해도 문제 해결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화여대의 한 교수는 “소속 기관은 아무래도 내부 사람을 감싸고돌기 마련이어서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고발자가 제보를 했다가 신분이 노출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익명 제보가 허용된다고 해도 연구과제명, 논문명, 구체적인 연구부정행위 등이 포함된 증거를 서면이나 e메일로 함께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소속 기관이 아닌 외부에 제보만을 받는 중립 기관을 설치해야 한다는 방안이 대책으로 제시된다. 미국의 경우 많은 대학과 기업은 ‘에틱스포인트’라는 회사와 계약하고 부정행위나 문제를 제보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1999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전화나 온라인으로 24시간 제보를 받으며 익명과 기밀을 철저히 보장한다. 개인정보보호 지침에 대한 보안대응책을 완비해 미국 정부로부터 안전성을 인증받기도 했다.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박흥식 교수는 “제보자를 확실하게 보호하기 위해 국내에도 제보를 전문적으로 받는 외부 기관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며 “하지만 증거 없이 의혹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방지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