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안 지는 거대권력 포털, 사이비 매체 행패에 눈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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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사이비 언론, 공룡 포털 등에 업고 돈 뜯어… 기업들 비명

《 “분기, 반기, 연간 가운데 어떤 걸로 하실래요?” 최근 재계 서열 20위권의 대기업 홍보담당자 A 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인터넷 매체의 요구 때문이다. 이 매체는 목돈을 주면 일정 기간 이 기업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를 쓰지 않겠다며 흥정을 해왔다. 유통업체 홍보담당자 B 씨는 “요즘 사이비언론은 완전히 ‘조폭’(조직폭력배) 수준”이라며 “‘건수’ 하나 잡으면 C, D, E 언론사가 미리 짜고 부정적인 기사를 동시에 포털에 올린다거나 C가 협박하면 D는 기사를 쓰고 E가 수금하는 등 역할 분담도 한다”고 말했다. 》

이런 협박이 가능한 것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매체들이 명백한 허위보도를 해도 이들이 무리지어 동시에 포털에 기사를 송고하면 독자는 마치 뭔가 큰일이 일어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 식품업체 마케팅 담당자는 “식품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는 기사가 포털에 올라와 부랴부랴 해당 매체를 찾아갔더니 허름한 방 한 칸에 PC 몇 대가 전부였다”며 “이런 식이면 나도 기자 하고 너도 국장 하겠다는 뜻에서 이들을 ‘나기자 너국장’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 영향력 잘못 행사하는 포털

사이비언론은 공통점이 있다. 기업에서 반응이 올 때까지 미확인 기사를 계속 쓴다는 것이다. 기사 내용도 뻔하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오너나 최고경영자(CEO)의 사생활을 비롯한 각종 루머를 다룬다. 특히 식품업체 같은 소비재 업계는 이들의 ‘봉’이다. 식품업체에 대해선 이물질이 나왔다는 식의 확인이 당장 불가능한 품질 관련 비방 기사를 쓴다.

사이비언론이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요구하는 금액은 500만∼1000만 원. 출처도 불분명한 ‘억지’ 기사에 수법도 뻔하지만 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한다. 포털에 뜨고 나면 사실 확인까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 동안 잘못된 소문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포털에 의한 여론이 왜곡된다는 우려도 있다. 인터넷 시장조사업체 랭키닷컴에 따르면 지난주 네이버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2753만 명, 다음은 2082만 명에 이른다. 다음의 경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 메인 화면에 내놓을 주요 뉴스를 자체 편집자가 고른다. 기사를 생산하지도 않는 포털 편집자가 언론사 기사를 선택하면서 여론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네이버는 메인 화면의 뉴스 편집은 ‘뉴스캐스트’라는 서비스를 통해 개별 언론사에 맡겼지만 별도의 ‘뉴스’ 코너는 직접 편집하고 있다.

○ 모든 콘텐츠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포털의 또 다른 문제점은 포털 외부에 존재하는 값진 콘텐츠를 헐값에 긁어모으는 ‘블랙홀’로 변해간다는 점이다. 특히 1위 사업자인 네이버의 경우 이런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달 초 한 통신사 마케팅 담당자는 충격에 빠졌다. 소비자에게 자신의 기업을 알리기 위해 운영하던 기업 블로그의 방문자가 갑자기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새 글이 뜸했던 것도 아니었다. 알고 보니 단순히 네이버가 “검색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실험 중”이라며 검색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이 통신사가 다른 포털의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한 게 문제였다. 네이버가 검색 방식을 바꾸면서 네이버가 아닌 다른 블로그를 검색 대상에서 제외하자 방문자의 3분의 2가 사라진 것이다. 기업 블로그 담당자는 “기업 홍보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네이버 블로그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네이버에게 ‘길들이기’ 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달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은 73.75%로 압도적인 1위였다. 2위 다음은 20.09%에 불과하다. 네이버에서 검색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라도 한국 인터넷 세상에서 눈에 띄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3위 구글은 겨우 2.79%다.

○ 포털에 대한 공적 규제 필요

포털이 통제받지 않는 공룡이 되자 권력에 마땅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특히 포털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공간에서 뉴스를 서비스하면서 사이비언론을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NHN의 원윤식 홍보팀장은 “포털이 어떤 언론사가 더 중요한지 직접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신뢰를 쌓아온 언론사와 기업 갈취를 목표로 갓 생겨난 사이비언론이 동등하게 취급된다. 포털 문제에 정통한 한 법대 교수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 형성을 위해 언론 관련 규제가 필요한 것처럼 이제 포털도 공적(公的)인 규제가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네이버를 서비스하는 NHN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했다. 네이버가 검색시장 점유율을 부당하게 이용해 다른 서비스까지 독점하려 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NHN은 행정소송을 내며 공정위의 판단에 불복했고 2009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 이겼다. 하지만 공정위가 다시 상고해 재판은 현재 대법원에 올라간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지난해 말부터 통신시장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선정 제도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포털을 부가통신사업자로 보고 시장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지 검토하겠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이동통신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SK텔레콤만 각종 규제 대상이었다. 앞으로는 네이버도 이런 규제를 받을 여지가 생긴 것이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포털#사이비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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