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 의사학연구소 초대 소장이자 ‘질병이 문명을 만든다’의 저자 헨리 지커리스트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요즘 많은 사람이 곤욕을 치르는 냉방병에 딱 어울린다.
실제 대기업의 여성 부장인 A 씨도 요즘 문명의 이기인 에어컨 때문에 공포에 빠져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출근할 때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나오는 찬바람에 시달리다 회사에서는 과도한 냉방에 콧물과 재채기를 주체할 수가 없다. 더욱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에어컨으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이다. 켜 놓은 에어컨을 자꾸 끄면서 남편 아이들과 충돌이 벌어진 것.
냉방병의 증상은 사실 감기와 유사하지만 에어컨 바람만 닿으면 콧물과 재채기가 발작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에서 감기와 구별된다. A 씨의 증상은 냉방병과 알레르기성 질환의 중간 형태로 볼 수 있다. 면역과민질환인 알레르기성비염에 가깝다. 이런 냉방알레르기 비염 환자는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보다 더 많다. 날씨가 무더워지는 것에 비례한다.
‘에어컨’과 ‘냉장고’로 대표되는 더위 퇴치용 문명의 이기는 한의학적 기준에서 봐도 많은 질병을 일으킨다. 냉장고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얼음과 냉수는 마시고 먹을 동안은 시원한 듯 느껴지지만 체열을 떨어뜨리고 면역능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른들도 위험하지만 면역기능이 약한 아이의 경우엔 성인이 될 때까지 인생을 괴롭히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익히면 작은 감자가 훨씬 빨리 익듯 아이들은 몸이 내·외부 자극에 쉽게 감응해 36.5도라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아이스크림과 냉수로 내부의 소화기계에서 감응한 냉기가 외부 호흡기계 쪽으로 전달돼 냉기에 민감한 알레르기 비염 형태의 질환이 된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런 질환을 ‘비구’라고 칭하고 폐가 차가워진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원인이 명확하기 때문에 치료도 손쉽다. 선인들이 여름 복날에 삼계탕이나 보신탕으로 외부로 기운이 흘러나가 차가워진 몸속을 데워 열원을 보충하듯 내부를 데워 외부로 체온을 퍼뜨려야 냉기를 없앨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에 ‘영감강미신하인탕’이라는 처방을 한다. 이 탕약은 온폐화음(溫肺化飮)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폐를 따뜻하게 하고 위장에 정류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등의 차가운 잉여 수분을 말린다는 뜻. 탕에 들어가는 약재를 봐도 그런 기능이 확인된다. 백복령은 수분을 배출하는 배수구를 만들며 말린 생강(건강)과 매운 세신은 몸을 데운다. 여기에 양기를 응축한 반하로 양기를 보충하면 외부 냉기에 민감한 콧물과 재채기는 확 줄어든다. 가정에서도 생강과 대추를 달여서 음용하면 처방 못지않은 효험이 있다.
알레르기는 면역의 과민성 반응이다. 냉방 알레르기에서 비롯된 콧물은 폐가 차가워서 흘리는 눈물이다. 따라서 차가운 몸을 데우는 데 치중하지 않고 콧물 자체를 없애는 데 급급하면 근본적 치료가 어려워진다. 모든 반응과 인식의 근원은 바로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면역의 과민반응인 냉방 알레르기도 자기 내부를 데워서 외부에 대한 과민함을 줄이는 데 치료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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