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주현(太白晝見), 낮에 금성이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고려 때 편찬한 역사서 ‘삼국사기’에는 이 구절이 모두 여덟 번 등장하는데 현대과학으로 계산하면 이 기록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지요.”
박창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사진)는 27일 강원 원주시 강원과학고에서 열린 ‘역사 속에 살아있는 천문지구과학’이란 주제 강연을 통해 전통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역사책에 기록된 천문활동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데 천체역학적 계산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224년인 백제 구수왕 11년 10월 낮에 금성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박 교수는 과거 금성의 위치와 밝기를 계산해 이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별은 등급이 낮을수록 밝은데 평소 밝기가 ―3.9등급에 해당하던 금성이 당시에는 ―4.67등급에 이르렀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낮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이는 삼국사기에 나온 구수왕 11년 때의 기록이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고대사 기록은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서와 비교해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346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백제 근초고왕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백제 초기 역사 기록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추가적인 사료가 필요했다. 구수왕 때의 기록은 근초고왕 이전의 백제 역사에 대한 하나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것은 중요한 문제다.
강연 내내 전통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박 교수는 학생들의 진로 고민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천문학도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올바른 답을 추측해내는 ‘직관력’이 중요합니다. 이 능력은 과학이 아닌 다양한 경험에서 나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많은 경험을 해야 자연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행사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주최하는 ‘톡톡! 과학콘서트 과학기술, 미래를 말하다’의 하나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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