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사실상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이후, 힉스 발견을 둘러싸고 그동안 있었던 일화들이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흥미를 더하고 있다.
1964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제안해 논문으로 출판한 6명 중 한 명인 제럴드 구럴닉 박사(사진)는 “하이젠베르크가 내 이론을 ‘쓰레기(junk)’라고 공격해 정말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50여 년 전 20대의 젊은 구럴닉 박사는 논문을 같이 발표했던 칼 헤이건 박사와 함께 하이젠베르크에게 힉스 이론을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로 양자역학을 정립하며 과학계에서는 신(神)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칭찬과 격려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돌아온 건 하이젠베르크의 신랄한 비판과 조롱. 구럴닉 박사는 “CERN의 발표로 50여 년 만에 내 이론이 인정받는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영국의 피터 힉스 박사는 힉스 입자 앞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 ‘신의 입자’에 대해 “그 말을 정말, 정말 싫어한다”고 강조하면서 “‘신의 입자’라는 표현은 그릇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우리를 거만한 물리학자처럼 보이게 만든다”며 질색했다. 그러자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2009년 5월 29일 힉스 박사의 80세 생일을 맞아 힉스 입자에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자는 이벤트를 벌였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이벤트에는 수수께끼 같은 입자라는 의미로 ‘미스테론(Mysteron)’, 만국 공통어를 희망하며 만들어진 에스페란토어로 희망을 뜻하는 ‘에스페론(Esperon)’ 등 수많은 후보 별명이 경합을 벌였다. 그 가운데 최종 승자는 ‘샴페인 병 입자’가 차지했다. 샴페인 병 밑바닥이 힉스 입자의 포텐셜 에너지를 나타내는 그래프와 비슷해 물리학 강의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만큼 기억하기 쉽고 물리와도 연관이 있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한편 ‘신의 입자’라는 별명에는 대형가속기 경쟁에서 결국 유럽에 패한 미국의 씁쓸한 역사도 엿볼 수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초전도 슈퍼콜라이더(SSC)’라는 당시 세계 최대 원형가속기 건설을 추진했는데, SSC가 찾고자 했던 게 바로 힉스 입자였다. 하지만 SSC는 건설을 추진하면서 예산이 2.5배 이상 늘었고 1993년 의회는 급기야 건설 계획을 폐기했다. 당시 미국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소장이었던 리언 레이더먼은 ‘신의 입자’라는 과학 대중서에서 SSC의 폐기를 아쉬워하며 “힉스는 물질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신의 입자’라는 별명을 붙인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힉스 입자 발견은 결국 유럽의 CERN이 보유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의 몫이 됐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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