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온호 “한국 쇄빙기술 과시할 것” 남극 거대빙붕해역에 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3일 03시 00분


20일 동안만 열리는 바닷길 웨들해 내년 4월 탐사… 美 英 獨 이어 세계 4번째
빙붕아래 극한 생태계 조사… 생명체 근거 모델로 활용

아라온호가 미국 남극빙붕탐사팀과 함께 내년 4월 서남극 북쪽에 있는 웨들 해의 라센 빙붕으로 탐사를 떠난다. 이곳은 극심한 추위 탓에 탐사가 까다로워 세계적으로도 미국 영국 독일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극지연구소 제공
아라온호가 미국 남극빙붕탐사팀과 함께 내년 4월 서남극 북쪽에 있는 웨들 해의 라센 빙붕으로 탐사를 떠난다. 이곳은 극심한 추위 탓에 탐사가 까다로워 세계적으로도 미국 영국 독일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극지연구소 제공
1914년 8월 8일 영국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대원 27명과 인듀어런스호로 남극 탐험에 나섰다. 그러나 목적지를 겨우 150km 앞두고 인듀어런스호는 웨들 해에 떠다니는 얼음 사이에 갇히고 만다. 10개월 뒤에는 배마저 부서져 이들은 배를 버리고 얼음 위를 걸어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영하 40도∼영하 30도의 강추위와 귀를 찢는 듯한 남극의 바람 소리는 대원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가 서서히 삶의 의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섀클턴은 대원들에게 자신의 비스킷을 나눠 주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섀클턴은 인듀어런스호에 있던 6m 크기의 구명정을 타고 선발대 5명과 함께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갔다. 마침내 칠레 정부에 구조 요청을 했고 칠레 정부가 구조대를 보내 전원 귀환했다. 난파 634일 만인 1916년 8월 30일의 일이다. 이처럼 남극의 웨들 해는 아무에게나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지역으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 20일만 허락된 바닷길

아직도 탐험가와 연구자들에게 공포의 장소로 알려진 웨들 해 탐험을 우리나라의 아라온호가 도전한다.

극지연구소는 미국 남극빙붕탐사팀과 함께 내년 4월 서남극 북쪽에 있는 웨들 해에 아라온호를 타고 탐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빙붕(氷棚)이란 대륙빙상이 흘러서 바다에 떠 있는 두께 300∼600m의 얼음을 말한다. 이 해역에서 빙붕 탐사를 하는 것은 미국 영국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다. 그동안 물자 수송과 해외 선박 구조를 위해 아라온호가 남극 빙붕 해역 인근에 투입된 적은 있었지만 탐사 목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닷길이 열리는 기간은 1년에 약 4개월. 이마저도 언제 열릴지 확실하지 않다. 극지연 측은 이 때문에 20일 안에 탐사를 마치고 복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구 온난화로 거대한 빙붕이 떨어져 나가고 있긴 하지만 4월의 남극은 겨울철이기 때문에 하루 만에 다시 주변이 얼어붙을 수 있다. 자칫 인듀어런스호처럼 얼음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극지 분야 기술은 우주항공 분야만큼이나 국가 간 기술 교류가 쉽게 이뤄지지 않지만 성공적인 임무 완수를 위해 연구진은 3년 동안 미국팀 탐사에 2번 동행하며 실전 노하우를 익혔다. 미국은 15년 동안 쇄빙선을 타고 빙붕을 연구해왔다.

연구 책임을 맡은 윤호일 극지기후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미국과 국제 공동탐사는 한국의 극지 연구가 시작된 지 2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번 탐사를 통해 아라온호의 쇄빙 능력과 항해 기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12만 년 전 지구기후 연구도

연구진이 향하는 곳은 웨들 해 북부에 위치한 라센 빙붕 해역이다.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라센 빙붕은 해마다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02년에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배에 해당하는 얼음이 예고 없이 떨어져 나갔다. 윤호일 책임연구원은 “해양 및 대기 순환의 특수성 때문에 서남극 북부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고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남극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연구자들에게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 좋은 기회다. 이전에는 거대한 얼음에 덮여 있어 배는 물론이고 잠수함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빙붕이 사라지면서 쇄빙선을 타고 탐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번 탐사에서 빙붕 밑 극지 바닷속 생태계를 연구할 계획이다. 유규철 극지연구소 극지기후연구부 선임연구원은 “빙붕 아래는 산소 없이 생활하는 생태계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빙붕이 사라진 지금 산소의 유입으로 환원성 박테리아들이 사라져 이걸 먹는 조개 등 생태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호일 책임연구원은 “극한 환경의 생태계를 연구함으로써 추후 인류가 외계행성을 탐사하거나 외계 기지를 지을 때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 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빙붕 탐사는 수십만 년 전 지구의 기후도 알려준다. 남극 대륙 밑에는 두꺼운 얼음이 내리누르는 힘 때문에 생긴 지하호수가 있다. 빙붕이 사라지면 지하호수가 해안가로 노출되는데, 여기서 얻은 퇴적물을 연구해 과거 지구의 기후를 알 수 있다. 연구진은 지구 역사상 가장 온난했던 12만5000년 전 환경을 비롯해 8000∼4000년 전 지구 기후가 지금보다 1∼2도 높았을 때의 환경도 이 퇴적물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윤호일 책임연구원은 “남극 빙붕 해역 탐사는 위험한 만큼 가치 있는 과학 성과들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이번 탐사가 한국의 쇄빙선 기술과 극한생태 연구가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라센 빙붕 ::

라센 빙붕은 꼬리뼈처럼 나와 있는 남극 반도의 동쪽 해안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1995년에 가장 북쪽에 있는 빙붕이 폭풍 때문에 작은 조각으로 갈라졌고 2002년에는 중부 빙붕이 떨어져 나갔다. 지금은 남부에만 일부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해양 및 대기 순환의 특수성 때문에 서남극 북부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고 추정한다.

송도=김윤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ymkim@donga.com
#아라온호#남극 거대빙붕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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