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부산 금정터널을 지나던 KTX 열차가 멈췄다. 열차에 있는 2대의 ‘전동기 냉각장치’가 모두 망가졌던 것이다. 이 때문에 500여 명의 승객은 1시간 동안 찜통 열차 속에 꼼짝 없이 갇혔다. 그런데 2015년이 되면 이런 사고는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50여 개 기관이 5년간 공들인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430X’가 2015년 상용화를 목표로 시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7월 25일 오후 11시 30분. 부산 부산철도차량정비단에서 최고 시속 430km를 자랑하는 해무가 어둠을 헤치고 고모역으로 출발했다. 아홉 번째 시운전을 하기 위해서다.
총 6량으로 편성된 해무는 맨 앞 칸을 제외한 5량에 410kW급 전동기가 1량당 4개씩 총 20개가 장착됐다. 기존 KTX처럼 양쪽 끝 열차가 전체를 끄는 것이 아니라 열차 각 차량에 동력이 설치돼 움직이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터널 내 정차사고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기환 철도연 고속철도연구본부장은 “기존의 동력집중식으로는 고속열차 속도가 한계에 도달했다”며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리려면 동력을 나누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동력분산식이 대세”라고 말했다. 실제 해무에 장착된 전동기 출력은 8200kW로 KTX산천의 8800kW보다 작지만 최고 속도는 시속 100km 정도 더 빠르다. ○ 빠를수록 커지는 공기저항 잡아라!
이날 해무는 울산역과 고모역 3회 왕복을 포함해 540km를 달렸다. 울산∼고모 구간에서 해무의 최고 속도는 시속 300km. 시속 430km로 단숨에 올리지 않는 이유는 ‘공기저항’ 때문이다. 공기저항은 속도의 제곱만큼 커지므로 열차가 빠르면 고속 주행이 어렵다.
핵심은 열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판토그래프(접전부) 조절이다. 고속열차는 2만5000V의 전력이 흐르는 전선에서 전기를 받아 움직인다. 전선과 판토그래프의 간격이 일정해야 전력 공급이 잘 이뤄진다. 그런데 고속으로 달리면 위로 뜨는 ‘양력’이 생겨 간격이 불규칙해지고 불꽃이 튀면서 전력이 끊기는 사고가 날 수 있다.
김영국 철도연 차세대고속철도기술개발사업단 책임연구원은 “판토그래프는 위가 둥글게 생겼기 때문에 위와 아래 공기 흐름 속도에 차이가 생겨 양력이 발생한다”며 “이를 조절하기 위해 판토그래프 아래쪽에 반달 모양의 ‘에어포일(airfoil)’을 붙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운전은 해무가 시속 300km 이상 달릴 때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에어포일 모양과 각도를 찾기 위한 것이다. ○ ‘소리 없이 강하게’… 브레이크도 다르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큼 잘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고속열차는 전동기를 거꾸로 돌리는 ‘전기제동’ 방식으로 속도를 늦추고 멈출 때는 ‘기계제동’ 방식을 쓴다. 해무는 KTX산천처럼 바퀴 축을 잡는 ‘디스크 제동’이 아니라 바퀴 휠을 잡는 ‘휠디스크 제동’을 선택해 정차 소음을 줄였다. 휠디스크 마찰제로 말랑하고 탄성이 큰 금속물질을 넣어 제동력도 높였다. 김영국 박사는 “탄성 있는 물질을 썼기 때문에 마찰력도 크고 휠디스크가 마모될 염려도 적다”며 “이 때문에 제동력은 더 커지고 멈출 때 디스크 축끼리 마찰하면서 나던 소리도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해무의 제일 뒤쪽 칸에는 일반 전동기가 아닌 ‘영구자석전동기’를 장착해 전력 효율도 높였다. 김기환 본부장은 “동력분산식 열차라는 장점을 활용해 영구자석을 적용하는 실험을 함으로써 진정한 차세대 고속열차를 제작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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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차의 바퀴와 모터 등이 붙어 있는 철도주행장치(대차)의 모습이다. 보통 열차 1칸에 2개의 대차가 들어가며, 대차 하나당 전동기가 2개씩 달려 있다. 해무의 시험 제작 차량은 5칸에 전동기가 달려 있으므로 한 칸에 4개씩총 20개의 전동기가 들어간다.
[2] 해무는 객차 아래에 전동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KTX-산천처럼 바퀴 축을 잡는 ‘디스크 제동’을 활용할 공간이 없다. 그 대신 바퀴 휠을 잡는 ‘휠디스크 제동’ 방식을 사용하는 한편 마찰제도 탄성 있고 말랑말랑한 것으로 바꿨다. 그 덕분에 소음은 줄고, 제동력도 더 좋아졌다. 시속 300km로 달리다 급제동할 경우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밀리는 안전거리 기준은 3300m인데, 해무의 경우 2870m로 더 짧아졌다.
[3] 기차가 빨리 달릴수록 공기 저항은 커진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 해무의 앞부분은 KTX-산천 등 다른 고속열차보다 더 길쭉하게 앞으로 빠진 모양을 하고 있다. 터널 등 좁은 공간을 지날 때 압력 등을 모두 계산해 적정한 모양을 찾은 것. 실제 실험에서도 시속 300km로 달릴 때 KTX-산천보다 10% 정도 공기 저항을 덜 받았다.
[4]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인 집전장치(팬터그래프)는 해무 한 편성(총 6칸)에 두 개가 붙어 있다. 보통 진행 방향 뒤쪽의 팬터그래프를 세워 전력을 공급받는다. 열차가 고속으로 달릴 때 공기 저항과 양력 등을 조절할 수 있도록 팬터그래프 맨 아래쪽에 반달 모양 의 에어포일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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