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이덕무’(차태현 분)는 도굴꾼, 폭탄제조가, 변장의 달인 등 조선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거사’를 제안한다. 우의정의 서자(庶子)로 출세욕 없이 살았지만 아버지가 정치적으로 억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되자, 얼음 창고를 털 계획을 세운 것.
고작 ‘얼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냉장고가 없었던 조선시대에 얼음은 금붙이보다 귀했다. 겨울에 꽁꽁 언 한강 얼음을 잘라서 넣어두면 될 것 같지만 여름에도 녹지 않게 얼음을 보관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석빙고를 지어 무더위에도 얼음이 녹지 않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부패세력도 석빙고를 만들지 못하고, 나라에서 만든 석빙고의 얼음 유통권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했다. 당시 석빙고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것은 많은 돈과 기술이 필요한 ‘거대과학(Big Science)’이었다.
○ 더운 공기는 위로…답은 ‘굴뚝’
이덕무의 목표물인 서빙고는 한양에 있는 두 개의 석빙고 중 하나다. 이곳에는 두께 약 12cm, 둘레 약 180cm 크기인 얼음 덩어리 13만4974개를 보관할 수 있었다. 당시 한양 외에도 청도, 현풍, 안동 등지에도 석빙고가 있었다.
석빙고는 돌무덤처럼 보이지만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얼음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과학적인 건축물이다. 전기 없이 냉장고 역할을 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굴뚝’에 있다.
석빙고 안쪽은 지면보다 낮게 파 얼음을 저장할 수 있도록 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5m 정도지만 지면에서부터 높이는 3m에 불과하다. 지면보다 낮게 판 덕에 지상보다 낮은 위치에 찬 공기가 항상 존재한다. 얼음은 짚이나 왕겨처럼 단열효과가 높은 재료로 싸서 바닥부터 쌓았고, 석빙고 주변을 화강암처럼 단열효과가 높은 암석으로 둘러 열기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여름철 푹푹 찌는 열기는 굴뚝으로 해결했다. 석빙고 안으로 들어온 더운 공기는 안쪽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위로 뜨게 돼, 천장에 있는 굴뚝을 통해 바깥으로 나간다. 이 덕분에 바깥에서 들어온 공기는 얼음에 접근하기 조차 어렵다.
○ 사람 머리만 한 돌이 얼음을 만들어?
석빙고가 인위적 냉장고라면, 우리나라 곳곳에는 여름에 얼음이 어는 자연 냉장고인 ‘얼음골’도 있다.
얼음골 현상은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경북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 충북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강원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등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밀양 얼음골은 TV드라마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얼음골은 열을 차단하는 ‘단열’과 공기의 흐름인 ‘대류’로 설명할 수 있다. 얼음골 근처에는 20∼30cm 크기의 화산암이 쌓여 만들어진 지형인 ‘너덜’이 있다. 겨울에 차갑게 식은 공기는 밀도가 커지면서 지면 쪽으로 가라앉는다. 이때 너덜 지형을 만드는 화산암 사이로 찬 공기가 스며 든다. 이렇게 돌 사이로 스며든 냉기는 봄이 되어 바깥 공기가 따뜻해져도 화산암이 열을 차단하기 때문에 여전히 차가운 상태로 유지된다.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바깥의 더운 공기가 너덜과 맞닿게 된다. 너덜 상부에 저장된 찬 공기가 같은 높이에 있는 바깥 더운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면서 너덜 안에 저장된 공기를 밀어낸다. 너덜 하부에 있던 찬 공기는 밀리면서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겨울에 저장된 찬 공기가 나오는 것만으로 얼음이 얼지는 않는다. 지형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 얼음골 대부분은 북향으로 동, 서, 남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겨울에는 거의 햇빛이 들지 않는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은 “지금도 충북 제천시 상천리 한양지 얼음골에 가면 조선시대 때 얼음을 캤던 흔적을 볼 수 있다”며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여름에 빙수를 즐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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