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판매점은 이동통신사에 중고폰을 파는 것보다 1만∼2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며 기자를 유혹했다.
8월 사용자 300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넘쳐나는 고가(高價)의 스마트폰이 제품 상태에 따라 10만∼50만 원에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중고 스마트폰은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한 해 최소 500만∼1000만 대가 반출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초기화해도 개인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정보까지 팔아넘기는 셈이다. 비정상적인 중고 스마트폰 유통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일선 판매점은 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무자료 거래’를 해 탈세 의혹도 제기된다.
사정이 이렇지만 관리감독 당국은 현실적으로 단속하기 어렵다며 손을 놓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밀수출되는 한국 스마트폰
동아일보 산업부는 13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동안 중고 스마트폰 유통경로를 추적했다. 이용자가 판 중고 스마트폰은 최소 4단계(그래픽 참조)를 거쳐 해외에 반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이용자는 새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기존에 쓰던 중고폰을 휴대전화 판매점에 판다. 판매점은 그 자리에서 이용자에게 판매대금을 지급하기도 하지만 본보가 취재한 판매점 10곳 중 9곳은 1∼5일 뒤 이용자의 은행계좌로 돈을 넣어 준다.
서울 종로구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남자 직원은 곧바로 판매대금을 주지 않는 이유를 묻자 “중고 스마트폰 전문 매매업자에게 되팔아야 현금이 들어오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중고 스마트폰 전문 매매업자들은 판매점을 매일 방문하지 않고 날짜를 정해 한 번에 수백 대를 수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직원은 “5만 원권으로 1억 원 이상의 현금을 들고 다니며 즉석에서 현금으로 결제하는 전문 매매업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매매업자들은 수거한 중고 스마트폰을 중국 상인에게 넘긴다. 그리고 중국 상인은 이를 다시 자국에 팔거나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로 수출한다. 중고 스마트폰 매매업자인 K 씨는 “유행에 민감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짧아 쓸 만한 중고 제품이 많은 곳으로 통한다”면서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스마트폰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이처럼 중고 스마트폰은 즉시 현금화할 수 있어 스마트폰 도난 사례가 최근 부쩍 많아졌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9일 도난 스마트폰 352대를 사들여 그중 일부를 중국으로 밀수출한 혐의로 장물업자 4명을 구속했다.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스마트폰의 상당수는 중고교생이 찜질방 등에서 훔친 뒤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장물업자에게 판 것”이라며 “과거 피처폰(일반 휴대전화)과 달리 스마트폰은 현금 30만∼40만 원과 마찬가지라 절도가 횡행한다”고 말했다.
분실한 스마트폰을 택시 운전사들로부터 사들이는 업자들도 있다. 서울에서 법인택시 영업을 하는 이모 씨(52)는 “승객들이 차에 흘린 스마트폰을 소속 회사에 갖다 주면 회사에서 이를 모아뒀다 한꺼번에 판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택시 운전사 박모 씨(48)는 “운전하다 보면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환하게 켜고 흔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분실폰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신호”라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중고 스마트폰은 연간 최소 500만∼1000만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한 해 국내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이동통신 3사를 합쳐 2000만 대에 이르는데, 중고 스마트폰 사업을 하는 SK텔레콤이나 KT로 회수되는 것은 1년에 200만 대가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용자가 팔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는 중고폰도 있지만 상당수는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얘기다.
○ 무자료 거래에 가짜 장부
탈세 의혹도 적지 않다. 일선 판매점은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기 때문에 중고 스마트폰 판매에 따른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계약서가 없는 무자료 거래를 하고 있다. 단속에 대비해 가짜 장부를 만드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 스마트폰을 판 사람을 자신의 휴대전화 고객으로 위장하는 식으로 판매 장부에 기재하는 것이다.
중고 스마트폰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해외로 유통된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산 스마트폰 1만 대에 불법 수거한 스마트폰 100대를 끼워 넣거나 중국 보따리상을 활용해 법망을 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한 번에 몇만 대까지 수출하는데 이를 일일이 확인할 방법도 없고, 장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샘플조사를 하고 있지만 허점이 많다. 이동통신사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휴대전화 뒷면의 기기 고유번호를 조회하면 정상 제품인지를 판단할 수 있지만 관세청은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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