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센터에만 오면 이상제품 멀쩡해지는 ‘머피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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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4일 18시 06분


‘뚱뚱하고 못생긴 얘 ~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 목욕탕을 찾은 날은 ~ 정기휴일 ~’

1990년대 중반에 큰 인기를 끈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다. 머피의 법칙이란 우연히도 나쁜 방향으로만 일이 진행된다는 뜻으로, 1949년 근무 중에 연속으로 불운을 겪은 미국 공군의 에드워드 머피(Edward A. Murphy) 대위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이런 머피의 법칙을 실감하는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전자제품이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아예 작동을 하지 않아서 고장이나 결함인줄 알고 A/S센터에 가져왔는데, 거기서는 아주 멀쩡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다행이라 하기에는 찜찜하고 화를 내기에도 머쓱한 상황이다. 왜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걸까?

우선 설명서를 정독하고

TV 수리센터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A/S 문의 중 하나가 바로 외부입력 버튼의 사용 미숙으로 인해 화면이 안 나오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는 특히 별도의 셋톱박스(방송신호 수신기)를 이용해 케이블TV를 시청하는 가구에서 자주 발생한다.

이 경우, 방송 신호가 셋톱박스를 거쳐 TV로 전송되므로 TV는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외부입력 모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만약 TV의 외부입력1(혹은 비디오1) 단자에 셋톱박스가 연결되어 있다면 TV도 당연히 외부입력1 모드로 두어야 정상적으로 케이블TV 방송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실수로 외부입력 버튼을 여러 번 눌러 TV가 외부입력2, 혹은 외부입력3 모드가 되거나 TV 자체의 채널 전환 버튼을 눌러 지상파 수신모드가 되었다면 당연히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 때는 다시 외부입력 버튼을 여러 번 눌러 TV를 외부입력1 모드로 되돌려야 한다.

리모컨의 버튼 몇 번만 누르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TV에서 말하는 ‘외부입력’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사용자들(특히 중장년층)에게는 큰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최근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TV 제조사들은 외부입력 상태에서는 TV리모컨의 채널 버튼을 눌러도 지상파 수신모드로 바뀌지 않도록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디지털카메라 사용시, 항상 자동모드로 두고 촬영을 하는 사용자가 실수로 수동모드로 스위치를 옮겨서 사진이 이상하게 나오는 경우도 비슷한 사례다. 이런 일은 소비자가 해당 제품의 기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서 일어나므로 사용 전에 반드시 사용설명서를 정독해야 한다. 아니면 처음부터 아예 단순한 기능만을 지원하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껐다 켜보세요

PC나 스마트폰과 같은 컴퓨터는 하드웨어만큼이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도 높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상에 있는 메모리(RAM)의 일정 용량을 점유한 상태로 작동하는데, 여러 소프트웨어를 연이어 실행하다 보면 언젠가 메모리가 가득 차서 시스템의 전반적인 동작속도가 급격히 느려지거나 여러 가지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 소프트웨어의 경우, 단독으로 실행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특정 소프트웨어와 동시에 실행하면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기기의 전원을 껐다 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간단하게 메모리의 여유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시스템 전반의 과부하 상태도 해결할 수 있다. PC의 경우, 완전히 전원 차단을 한 후 몇 초 후 다시 켜보고, 스마트폰의 경우는 배터리를 한 번 뺏다가 다시 끼우고 전원을 켜 보는 것도 좋다. 너무 단순해서 효과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의외로 상당한 효과가 있다. 실제로 PC나 스마트폰의 이상 증상으로 A/S센터에 상담을 해보면 가장 먼저 오는 대답이 ‘껐다 켜 보세요’다.

물론, 정상적인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속도저하나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태라면전원을 껐다 켜면 그 순간엔 조금 나아지긴 하겠지만 얼마 안 있어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이 때는 기기를 공장초기화 상태로 되돌려보자. 물론, 초기화 전에 개인 데이터는 반드시 다른 저장장치에 백업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정말로 기기의 고장이나 결함을 의심해 볼만하다.

우리 집 전기가 이상한가?

남들은 다들 멀쩡히 쓰는 기기라도 자신의 손에만 들어오면 이상해진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우리 집 전기가 이상한 것 같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전원 공급 설비가 노후 되거나 고장을 일으켜 전압이 오락가락하는 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며 사례도 많지 않다.

이 때는 애꿎은 전기 탓을 할 것이 아니라 해당 가정의 전반적인 사용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방자(자기장 방지)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대형 스피커 주변에 TV(특히 브라운관)나 디지털카메라를 두면 화면의 일부가 변색되는 등의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PC와 같이 내부 발열이 심한 기기는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곳이나 먼지가 많은 곳에 두고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기기는 내부 열 배출이 되지 않으면 고장 날 가능성이 크며, 먼지가 많은 곳에서 쓰면 통풍구가 막히거나 내부의 냉각 팬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습기가 많은 환경 역시 주의해야 한다. 습기는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들에게 치명적이다. 특히 스마트폰의 경우, 기기 내부나 배터리에 습기를 감지하는 침수라벨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라벨에 습기가 닿으면 색이 변한다(제조사에 따라 푸른색이나 붉은색). 라벨이 변색된 제품은 향후 A/S를 받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물건 간에도 ‘궁합’이 있다?

요즘 전자기기는 여러 가지 주변기기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분명 동일한 규격인 것 같은데도 특정 기기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주변기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무선인터넷(와이파이)을 하기 위해 쓰는 무선 공유기의 경우, 2012년 현재의 최신 규격인 802.11n 기준을 만족하는 제품은 이론상 최대 600Mbps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낸다.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802.11n 규격의 무선 공유기는 대부분 150Mbps나 300Mbps 정도의 속도만 낼 수 있으며, 몇몇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은 802.11n 규격을 지원하는데도 공유기와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802.11n의 이전 규격인 802.11g 규격의 속도인 54Mbps밖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업계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802.11n 규격의 와이파이 규격이 제정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802.11n 규격을 100% 만족시키지 못하는 와이파이 장비가 많이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와이파이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면 기기고장이라기보다는 공유기와의 궁합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USB메모리나 SD카드 같은 저장장치 역시 ‘궁합’을 탄다. 최근에는 USB입력을 지원하는 AV기기가 많은데, 상당수의 기기가 FAT나 FAT32 규격으로 포맷된 USB메모리만을 인식한다. 그런데 PC에서 USB메모리를 포맷할 때 고용량 제품은 NTFS 방식이 기본값으로 선택된 상태에서 포맷되는 경우가 있다. NTFS는 윈도 PC 전용 포맷 규격이라 카오디오나 콤포넌트오디오에서 인식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때는 고장을 의심하기 전에 해당 USB메모리가 혹시 NTFS로 포맷된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소비자들의 하소연 줄이기 위한 제조사들의 노력 필요

이렇게 고장인줄 알았던 전자기기가 A/S센터에 가기만 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머피의 법칙’이라기보단 사용자의 조작 미숙이나 부적절한 사용환경, 그리고 주변기기와의 궁합 문제에 의해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 때는 사용자 스스로가 약간의 조치를 거쳐 상당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조치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진짜’ 고장이나 결함도 있다. 그리고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이상증상이 아주 가끔씩 불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기기다. 이런 경우, 소비자는 최대한 기기가 고장임을 증명하기 위해, A/S기사는 고장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한바탕 씨름을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골치 아픈 과정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소비자는 A/S센터를 방문하기에 앞서 기기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다 했다는 점을 제조사에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 서술한 내용들이다. 돈 주고 물건을 산 소비자가 이런 수고까지 해야 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조사 측에서 어떠한 환경에서 쓰더라도 균일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사용법도 간편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광고문구를 앞세워 물건 팔기에만 급급한 제조사는 언젠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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