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백 m 길이의 교량, 수십 m 높이의 댐 같은 대형 토목공사를 할 때는 구조물의 안전을 위해 현실에 가까운 실험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와 같은 크기의 구조물을 만들어 실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비용도 엄청날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작은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해왔다. 문제는 모형실험으로는 실제 상황을 정확히 구현하기 어렵다는 것. 그렇지만 해결 방법이 있다. 작은 모형에 강한 중력을 걸어주는 것이다. 지구 중력보다 100배 강한 곳에선 50cm 높이의 모형빌딩이 50m 높이의 고층빌딩과 똑같은 힘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개발한 것이 바로 지구 중력의 수십 배 이상을 만들어주는 ‘인공중력 발생장치’다. 》 ○ 150배 인공중력 지상에서 만든다
중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물학 실험에서 사용하는 ‘원심분리기’처럼 작은 방에 실험 장치를 넣고 방 자체를 회전시키면 된다. 원심분리기와 다른 점은 수십 cm짜리 작은 회전판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수 m의 ‘강철 팔’을 회전시킨다는 것. 전투기 조종사들 훈련 때 쓰는 ‘가상중력 훈련장치’도 같은 원리다.
대전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산하 ‘K-water연구원’은 약 100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최대 150배의 인공중력을 만들 수 있는, 팔 길이 8m의 초대형 원심모형시험기를 개발·설치했다.
프랑스 ‘악티딘’사와 공동 개발해 설치한 이 장치는 무게 8t의 초대형 모형건축물을 회전시켜 지구 중력의 100배(100G)를 만들 수 있다. 모형건축물의 무게가 4t 이하라면 150배의 인공중력까지 만들 수 있단다.
원심모형시험기의 성능은 보통 모형건축물 무게에 얼마나 큰 인공중력을 가할 수 있는가로 표시한다. 즉 무게 1t당 인공중력의 크기로 나타낸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신형 원심모형시험기의 힘은 ‘800G·ton’이 된다. 원심모형시험기는 세계적으로 100여 대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KAIST, 강원대, 충북대, 대우건설연구소에 1대씩 총 4대가 있다. 그렇지만 국내에 설치된 시험기는 규모가 작아 토목공사 사전실험을 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나마 가장 규모가 큰 것이라고는 2007년 KAIST에 설치된 약 2t짜리 모형에 100배의 중력을 걸 수 있는 240G·ton 실험장치였다.
박동순 K-water연구원 기반시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에 설치된 시험기는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규모로, 댐이나 교량 건설 등 대규모 토목공사 전에 설계상 취약점을 미리 파악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 축소 폭파실험도 가능
원심모형시험기는 힘이 커질수록 실험 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이 있다. 중력이 강해진 만큼 건축물이 무너져 내리는 속도도 빨라진다는 것이다. 즉 100배의 인공중력 속에선 실제 댐이 무너진 후 100시간 동안 진행되는 과정을 1시간 만에 볼 수 있다. 수자원공사는 이런 실험을 위해 원심모형시험기 속에 지진모사장치, 고속카메라, 댐 붕괴 실험에 쓰는 물 공급장치 등 10여 종의 실험장치를 추가로 장착했다.
이 밖에도 원심모형시험기는 다양한 연구에 사용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공중력을 만들 수 있는 원심모형시험장비는 미국 육군이 보유하고 있다. 이 장치가 만들 수 있는 최대 인공중력의 크기는 350배로, 낼 수 있는 힘은 1144G·ton에 달한다. 미군은 이 실험장치 안에서 신형 폭약의 위력을 알아보고 있다. 100배의 인공중력 속에서 폭발 실험을 해 20cm 크기의 폭발 흔적이 생긴다면, 현실에선 그 제곱인 20m 크기의 폭발이 일어난다.
신동훈 K-water연구원 기반시설연구소장은 “수자원공사는 원심모형시험기를 이용해 새 댐의 구조 연구에 쓰는 한편 기존 댐의 취약점을 파악해 유지보수 계획 등을 세울 때도 사용할 계획”이라며 “국내 기업이나 대학 등 관련 연구기관도 이 시설을 쓸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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