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로 식수 만드는 비용, 수돗물의 25%”… “기밀문서에 냄새 묻혀 유출방지”
고등학생-학부모 대상 서울대 공대교수 특강
지난달 2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한무영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서울대 공대 프런티어 캠프’에 참석한 고등학생들에게 빗물 활용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39동 다목적회의실에서는 서울대 공대 교수 7명의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음악과 춤이 있는 공연(公演)이 아닌, 공학연구를 소개하는 ‘공연(工硏)’이었다. 각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교수들이 ‘테드(TED)’ 형식을 빌려, 공학이 미래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보여주는 신명 나는 자리였다.
전국에서 모인 고등학교 2학년생 75명과 학부모들은 공연에 앞서 3박 4일간 진행된 ‘서울대 공대 프런티어 캠프’ 마지막 날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참여 열기를 보여줬다.
○ 빗물 재활용으로 돈도 아끼고 홍수도 막고
첫 번째 연사로 나선 한무영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빗물이 가장 맛있다”란 말로 눈길을 끌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빗물과 수돗물, 생수를 각각 맛보게 한 뒤 가장 맛있는 물을 물었더니 3명 중 2명꼴로 빗물을 골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돗물을 만드는 비용은 빗물을 식수로 바꾸는 비용보다 4배 더 든다. 빗물 1L에는 불순물이 0.005g밖에 없지만, 강 상류(0.03g)를 거쳐 하류(0.1∼0.3g)로 갈수록 불순물이 늘어나기 때문에 수돗물 정화 과정에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한 교수는 “건물 지하에 빗물탱크를 만들어 빗물을 재활용하면 수도 비용을 줄이고 홍수 피해도 막을 수 있다”며 “공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거대하지만 섬세한 해양공학
김용환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해양공학의 세계를 소개했다. 높이 500m가 넘는 건물은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500m가 넘는 배는 해마다 쏟아져 나온다는 것. 특히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이을 수 있는 컨테이너 1만8000개를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배도 존재한다는 말에 청중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런 거대한 배들은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석유나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배는 항해 내내 출렁인다. 배에 실린 물질들도 함께 출렁이며 탱크에 반복적인 힘을 주는데, 자칫 탱크에 균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힘과 움직임을 섬세하게 제어하는 것이 공학의 일”이라며 “조선업이 발전한 우리나라에서 특히나 해양공학에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냄새 맡는 전자코, 보안에도 활용
이날 가장 인기가 높았던 순서는 박태현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의 ‘바이오 전자코’ 강연이었다. 그는 “미래에는 음식이 상했는지 확인하려고 냄새를 직접 맡을 일이 없어질 것”이라며 전자코를 소개했다. 박 교수는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분리한 뒤 나노튜브에 연결해 전자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자코는 냄새 원자 하나의 차이까지 알아챌 만큼 감도가 뛰어나 폭발물이나 마약 탐지용으로 유용하다. 그는 “기밀문서에 고유의 냄새를 묻히고 주변에 전자코를 설치하면 보안용으로도 쓸 수 있다”며 달라질 미래의 모습을 소개해 청중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 밖에도 국산 슈퍼컴퓨터 ‘천둥’을 소개한 이재진 컴퓨터공학부 교수,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을 짚어준 차상균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앞을 보지 못하는 이를 위한 인공 눈 개발자 서종모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원자력공학의 다양한 시뮬레이션 기법을 소개한 서균렬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강연에 대한 열기도 뜨거웠다.
○ 공학의 미래는 ‘홍익인간’
“제 연구실의 표어는 ‘홍익인간’입니다.”
이재진 교수의 말처럼 강사들은 ‘공학이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유기윤 서울대 공대 대외부학장은 “공대 교수들은 과학자보다 공학자라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며 “학생들에게 공학은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청중들은 모두 ‘최고의 강사, 최고의 강연’이라고 격찬했다. 공정인 양(서울 압구정고 2년)은 “‘상상만 하면 공상가가 된다. 실력을 갖춰서 공학자가 되어라’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며 강연의 여운을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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