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혹시 아침 일찍 진료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 전에 간신히 들어간 직장을 빠지기가 힘들어서요.”
최근 포도막염으로 진료실을 방문한 젊은이가 이렇게 말했다. 포도막염은 몸이 약해졌을 때 눈 속에 생기는 염증이다. 그는 “오전 8시에 진료를 받으면 출근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필자는 ‘아침형 소년’이었다. 하지만 ‘저녁형 청년’이 됐다가 이제 ‘밤형 장년’이 되고 나니 아침에 하는 콘퍼런스에 참석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됐다. 그래도 그 젊은이가 얼마나 일이 힘들었으면 눈 속에 염증이 다 생겼을까 싶었다.
“다음 주 오전 8시에 봅시다. 동공의 크기를 크게 하는 약인 산동제를 넣고 30분 정도 기다려야 되니 7시 30분까지 오세요.”
그 젊은이는 오전 7시 30분부터 진료를 받았고 필자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오히려 필자가 미안할 정도였다.
문득 ‘이번 기회에 오전 9시 진료를 오전 7시로 당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우선 새 전산시스템을 준비 중인 전산실장은 필자의 예약시간만 오전 9시 이전으로 당기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시스템상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외래간호과장은 이렇게 만류했다. “진료 30분 전에 동공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데요. 간호사가 경기도 포천에서 살아요. 오전 7시 진료에 맞추려면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서야 합니다. 근무를 일찍 시작해도 보상규정이 없어 노조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동료 교수는 이처럼 충고했다. “우리 과도 오후 9시까지 검사하고 진료를 한 적이 있었거든. 그렇게 하니 나는 보람이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더군. 조만간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말거야.”
하지만 조기 진료를 원하는 직장인과 어르신이 계속 눈에 띄었다. 몇 차례 회의를 했다. “조기 진료는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해준다. 최근 늦게 끝나는 진료도 정시에 마칠 수 있다. 그러니 3개월 정도만 해 보겠다”며 설득했다. 직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도 했다. 환자에게 산동제를 미리 줘 직접 눈에 넣고 오게 하면 동공이 커지도록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나왔다.
전산실과 간호과뿐만 아니라 접수 및 계산을 맡은 원무과, 조기 진료 전화예약을 담당하는 콜센터 등과도 협의를 거쳐야 했다. 또 병원 운영위원회에 조기 근무에 대한 보상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6개월 전 시작된 ‘오전 7시 진료’는 병원 내 여러 직원들에게 많은 ‘민폐’(?)를 끼쳤다. 하지만 환자와 직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어야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환자의 처지에서 바라보되 직원의 노동 강도도 줄이고 좀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계속 모색하고자 한다. 다른 병원과 진료과도 이 같은 시도와 노력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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