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수소저장합금을 제조할 때 쓴 ‘진공유도용해로’.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든 다음 티타늄 등 여러 가지 금속을 섞어 합금으로 만든다. 티타늄 수소저장합금은 기술 선진국에서 수출 금지 품목으로 지정될 만큼 제조가 까다롭다. 한국에너지재료 제공
수소를 태우면 매연이 아닌 물이 나온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연료로 쓴다면 대기오염에 대한 걱정은 줄어들게 된다. 수소를 연료로 쓰려면 자칫 폭발하기 쉬운 수소를 안전하게 담아둘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청정에너지 수소의 저장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연구진도 수소를 저장탱크가 아닌 쇳덩어리 속에 집어넣는 방법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 합금 1m³에 수소 130kg 저장
사실 ‘수소저장합금’에 대한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다. 수소는 가장 가볍고 작은 원자라서 금속 분자 사이 틈새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수소 저장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합금을 찾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수소저장합금의 무게당 저장효율은 1.5% 정도였다. 무게 1t 합금 덩어리에 수소 15kg가량을 넣는 정도였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고효율수소에너지 제조 저장 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 기업인 한국에너지재료와 공동으로 ‘고용량 티타늄계 수소저장합금 대량 제조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연구진은 특수 용광로를 이용해 기존 합금보다 반응성이 좋은 합금을 만들었다. 저장 효율은 2%대로 지금까지 나온 수소저장합금 중 효율이 가장 좋은 편이다. 이 수소저장합금 1m³의 무게는 6.5t에 이르지만, 가로 세로 높이 각각 1m의 공간에 수소 130kg을 담을 수 있다.
외국산 수소저장합금 1kg의 가격은 5만 원 안팎으로 1t은 5000만 원 정도의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이번에 개발한 수소저장합금은 외국산에 비해 가격도 10% 정도 저렴하다. 희토류처럼 수급이 어려운 금속이 아닌 구하기 쉬운 티타늄을 썼기 때문이다.
김병관 한국에너지재료 사장은 “부피만 놓고 계산하면 수소를 초저온으로 냉각한 ‘액화수소’보다 효율이 좋다”며 “무게 때문에 승용차 등에는 쓰기 어렵지만 건설장비나 잠수함 등에는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 하데베(HDW) 같은 방위산업체는 수소저장합금을 이용한 무소음 수소잠수함을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 숯, 얼음에도 저장한다
수소자동차에는 주로 고압탱크 방식이 쓰인다. 700기압이 넘는 압력을 견디는 특수탱크에 수소를 담는 것이다. 10kg 정도의 고압탱크에는 5kg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데, 이 정도면 500∼600km를 주행할 수 있다.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더 튼튼한 고압탱크가 나와야 한다.
수소를 대량으로 저장하기 위해 초저온 기술을 쓰기도 한다. 수소는 영하 253도에서 액체로 변하는데, 이 액화수소를 저온탱크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탄소 덩어리인 숯 사이사이에 수소 원자를 끼워 넣는 ‘활성카본 냉동흡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이 방법 역시 영하 200도까지 온도를 낮춰야 하지만 저장 효율은 6.5% 정도로 수소저장합금보다 높은 편이다.
높은 온도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화학반응 저장법’도 있다. 보통 마그네슘 합금을 쓰는데, 효율은 7∼8%까지 높일 수 있지만 300도 이상의 높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대안으로 알루미늄 합금의 일종인 알라네이트를 쓰기도 하는데, 70∼170도에서 5.5% 효율로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
이흔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은 2005년 수소를 얼음 속 물분자 사이에 밀어 넣어 가두는 ‘수화물’ 보관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상섭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다양한 저장 방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실제 사용에 있어서는 수소저장합금이나 고압탱크 방식이 유리하다”며 “고효율 수소저장기술만 확보된다면 석유 의존 에너지 정책도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