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 리포트]한국말 서툰 다문화아이… 두 가지 언어 배운다고 발달 늦어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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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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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훈 순천향대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심세훈 순천향대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얼마 전 베트남 출신 여성이 눈물을 글썽이며 6세 아이를 진료실에 데리고 왔다. 그는 “우리 딸은 말을 잘 못한다. 내가 한국말을 못해 제대로 못 가르쳤다”며 자책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한국말을 꽤 구사했다. 다만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아이는 지능이 조금 낮았고, 언어발달에 어려움이 있었다. 간질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도 앓고 있었다. 일단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거라고 안심을 시킨 뒤 아이에게 언어치료와 약물치료를 했고 부모교육도 병행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가 여러 언어에 노출되면 자국어를 배우는 데 지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 여성도 서툰 한국어로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했다.

필자는 2011년 8월부터 1년여 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방문교수로 일하며 자폐증을 연구했다. 스탠퍼드는 전 세계의 정보기술(IT) 인력이 몰려오는 곳인 만큼 이중 언어가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어 이와 관련된 모임에도 자주 참여하곤 했다.

세계 어느 곳이든지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건 그 말을 듣고 사용하는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동시에 두 언어에 노출된다고 해서 언어발달에 지장이 생긴다는 건 오해다. 아이가 언어를 늦게 습득한다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지, 두 가지 언어에 노출돼서는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각자의 모국어를 사용하면 아이에겐 이득일 수 있다. 엄마가 모국어를 사용하면 아이와 엄마가 정서적으로 더욱 친밀해지고 엄마가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니 아이 뇌에 있는 언어중추도 잘 자극된다. 이럴 때 아이는 다른 언어도 더 빨리 습득한다. 두 가지 언어를 쓰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두 개의 언어체계를 동시에 발달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2세 아이라도 두 가지 언어에 노출됐을 때 각각의 언어를 구분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언어를 전환해서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 한 가지 언어만 가르쳐야 언어를 더 잘 습득한다는 근거는 없다.

말을 배운다는 건 어학공부를 하는 게 아니고 의사소통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어학공부를 할 때 작동하는 뇌 영역과 대화를 할 때 작동하는 뇌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의사소통에는 말뿐 아니라 정서적 교감, 분위기 파악 등이 포함된다. 자국어이든 외국어이든 상관없이 대화를 통해 아이 뇌의 언어중추 영역을 많이 자극해 주는 게 좋다.

한국어를 아직 잘 구사하지 못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라도 엄마의 모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잘 발달돼 있다면 언어발달에는 큰 문제가 없다. 말문이 늦게 트인다고 억지로 엄마가 모국어를 쓰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는 엄마와 정서적인 교류를 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부모가 각자의 언어로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적극적으로 양육하는 게 좋다.

심세훈 순천향대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다문화아이#언어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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