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후반의 최민섭 씨(가명)는 얼마 전 우울증 증세로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은행에서 간부로 일해 온 최 씨는 원래 몸도 건강했고 성격도 쾌활했다. 퇴직한 뒤에는 증권투자로 돈도 많이 벌었다. 등산과 여행을 다니고 시도 썼다.
부인과의 금실도 좋았다. 그는 항상 배우자를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 여겼다. 그러던 부인이 몇 년 전 폐암에 걸렸다. 투병 끝에 3년 전 세상을 떴다. 최 씨는 부인을 잃은 뒤 1년 가까이 우울하게 보냈고 식욕을 잃어 체중까지 감소했다.
이때 직장 없이 집에서 놀고 있던 맏아들과 크게 다퉜다. 최 씨는 흥분하다가 발을 헛디뎌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1년간 깁스를 하기도 했다. 어느새 이전의 밝은 모습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최 씨는 김도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서 우울증을 진단받고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후 항우울제를 꾸준히 복용한 뒤 회복됐다.
○ 자아존중감 상실이 우울증으로
노인이 되면 많은 것을 잃어 간다. 청춘을 바쳐서 일하던 직장에서도 물러나야 하고 건강하던 신체도 쇠약해진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배우자나 친구를 잃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런 스트레스는 나이가 들면 흔히 발생하는 뇌혈관질환이나 미세뇌경색 등과 겹쳐지면서 노인들에게 우울증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을 찾았다면 혹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체크해 보도록 하자. 우울증을 앓는 노인은 대화나 사고의 주제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갑자기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이런 기분을 이기기 위해 지나치게 흡연을 하거나 알코올 약물 등에 의존하기도 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주위의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해질 수 있다.
간혹 “집중이 안 되고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인지기능 저하나,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아프다”는 신체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소화장애, 변비, 설사, 두통, 뒷목의 뻣뻣함, 팔다리 저림, 전신 피로감, 근육통 등이 동반될 수 있다.
노년층이 이런 증상을 나타낼 때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노인들이 우울증을 앓으면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미국 볼티모어 지역의 요양소에 거주하는 454명의 노인 환자들을 1년간 추적해 연구한 결과가 그랬다. 우울증을 앓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2배 높았다.
노인 우울증은 생물학적 요인도 있지만 사회적인 요인도 크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역할이 점점 작아지면서 자아존중감이 상실되고 삶에 대한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 “삶에 대한 이유 찾도록 도와줘야”
우울증은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게 효과도 좋을뿐더러 합병증이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노인에게 발생하는 우울증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우선 가족이 항상 관심을 갖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많이 나눠 주는 게 좋다. 오병훈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족의 정서적인 지지도 필요하지만 노인이 사회적인 활동을 통해 삶에 대한 이유를 찾도록 도와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 종교활동 재취업 등을 하도록 소개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울증 치료법은 다양하다. 남궁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치료 중 가장 좋은 치료법은 약물 치료”라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증상이 좋아지더라도 최소한 6개월 이상은 복용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법은 우울증의 종류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약국에서 안정제를 사먹거나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등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약물 치료만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사와 면담해 자신의 힘든 점을 말하고 심리적인 갈등을 치료하는 ‘정신치료’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인관계를 회복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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