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 위치한 포스텍 동북쪽 끄트머리에서는 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다.
8차로 넓이로 파헤쳐져 있는 1km 정도의 땅에는 일렬로 박혀 있는 철심이 드문드문 보였다. 대한민국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을 것으로 평가받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설 현장이다.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추진단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은 “길이 1100m, 높이 3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단층건물이 될 것”이라며 시끄러운 공사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 보유국이 된다. 이 가속기는 살아있는 세포나 단백질처럼 작은 물질의 구조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독일과 스위스는 건설 중이고, 영국과 중국도 개발 계획을 밝힐 만큼 전 세계 과학계의 관심이 뜨겁다.
과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체를 보기 위해 현미경을 개발했다. 그러나 가시광선은 파장이 수백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여서 이보다 작은 물체는 볼 수 없다. 파장이 짧은 빛을 이용할수록 작은 물체 내부까지 속속 들여다볼 수 있다.
“포항가속기연구소에는 이미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있어요. 물질의 특성을 밝혀내고 암세포 구조를 밝히는 등의 성과를 냈습니다. 그렇지만 세포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얼린 뒤 절단해 봐야 해서, 살아 있을 때 특성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죠. 빠르게 분해되는 분자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요.”
이번에 구축하는 4세대 가속기는 3세대보다 빛이 100억 배 밝고 빛의 진폭도 짧아 1000조분의 1초(펨토초·fs)로 움직이는 모습도 관측할 수 있다. 분자들이 어떻게 결합하고 분해되는지 정확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노 세계를 보는 현미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속기가 이처럼 강력한 빛을 낼 수 있는 것은 전자의 특성과 자석 덕분이다. 가속기 한쪽 끝에 설치된 전자총에서 발사된 전자빔은 710m 길이의 선형 가속기를 지나면서 빛의 속도로 빨라진다. 전자빔은 다시 영구자석이 만든 자기장을 통과하면서 뱀이 기어가듯 좌우로 진동하는데, 이때 전자가 급격하게 방향을 꺾으면서 방사광을 낸다. 이렇게 생성된 빛은 규칙적으로 정렬되고 서로 중첩되면서 태양의 100경 배나 밝은 빛이 된다. 이 빛이 물체를 통과하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구조와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9일 열린 4세대 방사광가속기 기공식은 가속기 구축이 본궤도에 올랐음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고 단장은 “총 사업비 4260억 원 중 현재 확보된 예산은 1700억 원에 불과하다”며 “내년 11월 완공 예정이지만 예산 확보에 차질이 생긴다면 1, 2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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