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A피부과는 최근 ‘폭탄 상품’을 내놓았다. 초음파 주름 치료 시술비를 80% 할인하는 내용. 고강도 집속 초음파(HIFU) 기구를 이용해 주름 치료를 받으려면 평균 300만 원대가 든다. 새 상품은 60만 원대여서 환자가 2주 만에 20%가량 늘었다고 한다.
원래 5월은 병원 업계에서는 세일의 계절. 휴가와 방학이 겹치는 7, 8월보다 손님이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갈수록 병원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불황이 계속되면서 저가 마케팅이 더 활발해지는 추세다.
○ 진료 과목 가리지 않고 할인
가격 파괴 현상은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몰린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톡스 시술을 보자. 부위당 평균 20만∼30만 원대였지만 5만 원대로 낮춘 병원이 나왔다. 부위당 평균 80만∼100만 원대인 필러 시술 역시 20만 원대의 초저가 상품이 생겼다.
A피부과 관계자는 “수술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검사를 최소화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대폭 줄여 저비용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의 B정형외과병원는 300만 원 이상의 인공관절 수술비를 50% 할인했다. 백화점의 ‘반가 세일’을 떠올리게 한다. C한방병원도 최대 50%를 할인하는 ‘척추디스크 스마트케어 특가 이벤트’로 매출을 늘렸다. 이에 대해 저가 마케팅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격 파괴 경쟁이 의료 시장 질서를 망가뜨리고 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서울 강남의 E성형외과 원장은 “보톡스가 부위당 5만 원이라면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 원료를 썼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며 “이 경우 효과가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지거나 시술 부위가 울퉁불퉁해질 수 있다. 감염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 규제, 현실적으로 불가능
50만 원대 라식 수술이 등장한 안과 업계도 마찬가지. 라식 수술은 도입 초기에 300만 원대가 들었다. 최근에는 13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30병상 이상을 갖춘 D안과병원 이사장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맞다. 라식수술은 정교함이 생명인데, 50만 원대 수술을 하는 병원이 10억 원대 최신 기계를 구비했겠느냐. 품질이 떨어지는 4000만∼5000만 원짜리 중고 라식 기계를 쓸 것이다”고 말했다.
가격 파괴가 의료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F정형외과 원장은 “인공관절 수술 50% 할인 정책은 수익을 포기해도 환자를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덤핑 정책”이라며 “수술비로 수익이 거의 나지 않으니까 불필요한 검사로 수익을 보전할 것이다. 이런 치킨게임이 계속된다면 작은 정형외과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현재로서는 이런 저가 경쟁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비급여 진료비는 시장 논리에 의해 정해진다. 환자에게 저가 상품 이용 시의 유의점을 알리는 것 외에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진료비 경쟁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병원이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불필요한 치료를 유도하거나 저질 재료를 사용할 개연성이 높다”며 “환자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의 관리 감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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