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어느 날 진료를 위해 아침 일찍 외래진료실로 향했다. 미혼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내 뒤를 따라 바로 쫓아 들어왔다. 진료 시작시간이 아직 20여 분 남아있을 때였다. ‘무슨 심각한 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환자와 마주 앉았다. 그 젊은 여성은 앉자마자 눈에 눈물을 가득 보였다. 좋은 직장을 다니는 전문직 여성이었다. 회사 정기검진에서 자궁경부 세포검사를 받은 뒤 이상소견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회사 근처 개인의원을 찾았다가 종합병원에 가라는 권유를 받고 아침부터 방문한 것이었다.
일단 환자를 안심시킨 뒤 진찰을 했다. 환자는 물론이고 다른 의료진과 상의한 뒤 이날 바로 자궁경부원추절제술과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였다.
일주일 뒤 검사결과를 확인하러 환자가 다시 왔다. 침윤성자궁경부암 1기라는 말을 듣고 환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부인과 의사들은 이럴 때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환자는 미혼이고 너무 어려서인지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하염없이 우는 환자를 바라만 보다가 한마디를 해줬다. “자궁을 적출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고 아기도 낳으실 수 있어요”라고.
국내에서 침윤성자궁경부암은 부인과 악성종양 중 가장 흔하다. 자궁뿐만 아니라 그 주위조직인 자궁방, 질의 상부까지 광범위하게 절제하는 ‘광범위전자궁적출술’과 ‘골반임파절제술’을 하는 게 교과서적인 치료방법이다.
출산을 꼭 해야만 하는 여성이라면 좀 다르다. 자궁체부, 몸통은 남겨두고 자궁경부, 자궁방조직, 질 상부와 골반임파절제술을 하는 ‘광범위자궁경부절제술’을 한다.
최종 조직검사 결과에서 암이 다른 부위에 전이되지 않고 절단면이 깨끗하면 자궁체부와 질을 연결하는 ‘자궁경부봉축술’을 한다. 이럴 때는 향후 임신을 할 수 있다. 이 수술은 개복수술이 아닌 복강경수술로 할 수 있으니 상처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이 환자는 위와 같은 설명을 듣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환자는 수술 당일 의사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한 번 잘 부탁한다고 했고 필자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환자도 별 문제없이 퇴원했다.
그 후 환자는 정기검사를 받던 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임신을 했다. 이후 임신 39주에 제왕절개수술로 건강한 남자아이를 분만했다. 환자는 현재 둘째를 기다리며 정기검사를 받고 있다. 이제는 필자 앞에서 울지 않고 아들 자랑만 한다. “제 아들은 천재 같아요….”
출산이 꼭 필요할 때는 전문의와 상의해 자궁을 보존할 방안을 찾아 향후 임신을 계획할 수 있다. 이는 모든 환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부인과 전문의와 적극적으로 상담하고 수술 뒤 정기적인 진찰을 받는 등 노력을 해야 한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쉽지도 않다. 그래도 선택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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