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질환 발병·사망률 낮추는 대체 제품으로 금연 유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5일 03시 00분


‘신형 담배’ FDLI 콘퍼런스

스티븐 킹의 작품 중에 ‘금연주식회사’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는 담배를 끊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의 금연을 돕고, 그 비용은 1년 후 성공 사례금으로 받는 ‘금연청부회사’가 등장한다. 이 회사의 금연성공률은 98%나 된다. 그 회사의 영업 노하우가 대체 뭐기에….

이 회사의 비밀스러운 영업 노하우를 알고 나면 경악하게 된다. 한 번 흡연을 하면 부인을 ‘전기 방’에 가둔다. 네 번 금연 약속을 어기면 아들을 폭행한다. 흡연자의 가족을 폭행함으로써 흡연자가 금연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폭력’으로 금연을 강요한 셈이다. 이 소설만 보더라도 자신의 의지만으로 담배를 끊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후배로부터 ‘늘 담배를 물고 화난 듯한 표정을 했지만 열정은 엄청났다’(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씨)고 기억된 라디오 DJ 이종환 씨가 폐암으로 최근 별세했다.

그 다음 날에는 세계금연의 날을 맞아 안윤옥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팀이 15년간(1993∼2008년) 서울의 남성 흡연자 1만4533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폐암에 걸린 남성의 56%는 흡연이 원인이라는 점, 폐암 발병 확률도 비흡연자의 4배라는 점이 골자였다.

하지만 이런 뉴스들이 당장 흡연자들을 금연으로 이끌진 못한다. 오히려 연구 결과에 스트레스를 받아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일지도 모를 일이다. 국내외의 여러 통계에 따르면 금연을 결심한 사람 중 의지만으로 1년 동안 금연에 성공하는 확률은 5% 미만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신형 담배’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기존 담배에서 신형 담배로 배를 갈아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담배들은 안전한 걸까.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식품의약품법재단(FDLI) 주최로 연례 콘퍼런스가 열렸다. 정부 관계자, 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이 식품·약품 관련 법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다.

마침 올해 주제가 담배와 관련된 것이었다. 니코틴 대체용품, 금연보조제품 및 ‘유해성완화담배(MRTP·Modified Risk Tobacco Product)’에 대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최신 규제 동향과 담배 제품에 대한 현행 규제의 적절성, 향후 전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어떤 얘기들이 오갔을까.

FDLI 콘퍼런스에 참석한 담배 관련 전문가들은 신형 담배(전자담배, 무연담배 등)가 덜 유해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다만, 신형 담배가 실제로 ‘얼마다 덜 해로운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과 소위 ‘끊든지 죽든지(quit or die)’ 식의 금연 일변도 담배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집중 논의됐다.

미국은 2009년 담배 제품에 대한 FDA의 관할권을 인정하는 ‘가족흡연방지 및 담배규제법(FSPTCA)’을 제정했다. 건강상의 위험을 감소시킨 ‘유해성완화담배’에 관한 조항도 별도로 마련해 세부 지침을 정했다. 이를 통해 FDA의 승인을 받지 않는 한 특정 담배가 ‘유해성완화담배’라고 주장할 수 없도록 했다. 유해물질, 담배 관련 질병 위험성, 유해성 감소 효과가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권한도 FDA에 부여했다. 신형 담배가 잇달아 나오는 환경을 감안해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많은 전문가들은 새로운 환경에 맞춰 금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미첼 젤러 FDA 담배제품센터장은 “‘유해성완화담배’ 규정의 목적은 덜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담배 제품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덜 유해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을 선별해 내는 데 있다”고 밝혔다.

모든 담배를 똑같은 수준으로 위험하다고 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프 스티어 미국 국가공공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각 담배 제품의 위험 수준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담배는 위험하다’고만 말하면 안 된다. 그 경우 사람들은 모두 위험하다고만 생각할 뿐, 제품별로 위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고 밝혔다.

유해성이 낮고, 금연에 도움을 주는 대체 제품의 사용을 권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치의학자이자 루이빌대 제임스 그레이엄 브라운 암센터 수석과학자인 브래드 로듀 교수는 “흡연자가 대체 제품을 이용하지 않고 금연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대체 제품을 이용하지 않고 금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효과적인 대체재를 제공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른 사람들은 담배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일지 몰라도, 나의 목표는 질환 발병 및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권기원 기자 billg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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