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가즈오 도호쿠대 교수가 자신이 개발한 고자기장 물성실험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와타나베 교수는 액체 헬륨을 쓰지 않아 유지비가 적고, 성능이 뛰어난 ‘전도 냉각 방식’ 초전도 자석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센다이=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오사카대. 이곳에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토양에 스며든 방사능 물질을 자기장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는 니시지마 시게히로 교수의 양자성생체·재료공학연구실이 있다.
○ 방사능 물질 제거기술 시연
27일 방문한 니시지마 교수의 연구실. 니시지마 교수는 자기장으로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을 시연해 보였다.
방사능 오염 지역을 정화하려면 기존에는 땅을 2∼3cm 두께로 긁어내 이 흙을 물에 풀어 제올라이트라는 다공성 물질로 세슘만 흡착시키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니시지마 교수팀은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돌이나 일반 흙이 아닌 진흙 중 일부에만 스며든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이에 연구진은 오염된 토양에서 자갈과 일반 흙을 걸러 낸 다음, 0.7T(테슬라·1T는 지구자기장의 2만 배)의 강한 자기장을 걸어 주자, 세슘이 붙은 진흙만 분리돼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니시지마 교수는 “자기장의 힘을 2T 이상으로 키우면 기존 방식보다 처리 속도를 3배 이상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니시지마 교수의 이 같은 성과는 자기장을 이용한 응용 연구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세슘 분리 기술 외에도 다양한 자기장 분리 기술로 10여 개 기업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26일 방문한 일본 센다이 시 도호쿠대 고자기장물질연구센터도 산업적 응용을 위해 자기장 연구를 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15대의 크고 작은 고성능 자기장 연구 설비 때문에 건물에 들어서면 웅웅거리는 소리가 무척 시끄럽다. 이곳에는 세계 5위 안에 꼽히는 31T 출력의 강력한 자기장 연구 설비가 있다.
이 센터를 총괄하는 와타나베 가즈오 도호쿠대 교수는 “강한 자기장을 이용해 물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는 데 쓰는 이곳 설비들은 물질 구조 분석 연구자들에겐 필수 장치”라며 “정부에서 연간 6억 엔(약 70억 원)의 운영비를 지원해 전국의 대학, 기업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 제조사인 도요타와 혼다도 이곳 시설을 이용해 희토류 금속 사용량을 10분의 1까지 줄인 신형 전기엔진 소재를 개발 중이다.
○ 日 날고, 韓 이제 걸음마
일본은 국가가 나서서 고성능 자기장 실험 장비 개발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많은 연구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 개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 덕분에 고출력 자기장을 만들고, 이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자기장 연구 개발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으로 꼽힌다.
자기장 실험 장치는 출력이 강할수록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가 ‘고출력’ 장비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자석의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전도 기술이 핵심인데, 지금까지는 초전도 현상을 만드는 데 액체 헬륨을 주로 썼다. 그러나 와타나베 교수는 액체 헬륨을 쓰지 않고 초전도 현상을 만드는 ‘전도냉각식 초전도 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현재 도호쿠대는 일본물질재료연구소(NIMS)와 공동으로 47T 장비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이 장비가 완성되면 세계 최대 출력의 고자기장 실험 장비로 자리매김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10T 이상의 성능을 가진 연구용 고자기장 장비는 3대뿐이고, 30T급의 초고자기장 연구시설은 아예 없어 관련 연구를 하려는 연구자들은 해외까지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김동락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물성연구부장은 “국내에서도 고자기장센터 건립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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