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한반도 고래의 타임캡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8일 03시 00분


■ 안용락연구사, 고래그림 58점 분석

안용락연구사, 반구대 고래그림 58점 분석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송찬호 ‘고래의 꿈’ 중)

한반도 바다에서는 어떤 고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참돌고래와 남방큰돌고래, 낫돌고래, 상괭이 등 돌고래류와 밍크고래 정도에 불과하다. 혹등고래와 참돌고래, 브라이드고래, 향고래, 범고래는 2, 3년에 한번 볼 수 있을 정도로 뜸하고, 귀신고래는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해양수산연구사는 “지금은 한반도 주변에서 볼 수 없는 고래들이 예전에는 많았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근거는 5000여 년 전 그려진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전체 296점 중 58점이 고래 그림이다.

그림 속의 고래는 각각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뚜렷하게 그려졌다. 이를 통해 고래의 종을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생김새만 구분될 뿐 종을 알려 주는 특징을 찾기는 어려웠다. 안 연구사는 “5000년 전 인류는 기껏해야 통나무를 가죽 끈으로 엮은 작은 배를 이용했기 때문에 먼바다로 나가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고래를 자세히 관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안 연구사는 이런 것들을 고려해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 그림을 분석한 뒤, 올해 4월 22일 울산고래축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그가 찾은 고래는 모두 네 종. 먼저 반구대 암각화에서 가장 큰 고래 그림으로, 배 전체에 주름이 가득 그려져 있는 것을 안 연구사는 혹등고래로 봤다. 대왕고래, 참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배에 주름이 많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가슴지느러미까지만 있고,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먼바다에 살며 빠르게 헤엄치기 때문에 제외했다.

암각화 왼쪽에는 비슷한 모습의 고래 세 마리가 눈에 띈다. 송 시인이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으로 표현한 고래 특유의 물을 뿜는 행동이 묘사돼 있다. 이 고래는 북방긴수염고래일 개연성이 크다. 뭉툭하고 넓은 가슴지느러미 모양과 활처럼 아래로 휜 아래턱의 모습 때문이다. 안 연구사는 “전체적인 몸의 곡선이나 가슴지느러미 모양은 귀신고래와도 비슷하지만 입 모양이 다르다”고 말했다.

다른 고래를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한 범고래도 5000년 전 한반도에 자주 나타났다. 암각화에서 혹등고래 왼쪽에 있는 고래는 전형적인 범고래의 특징인 긴 등지느러미와 얼룩무늬가 있다. 이와 함께 목에 5개의 주름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 고래는 귀신고래라는 것이 안 연구사의 주장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가운데 북방긴수염고래와 귀신고래는 현재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다. 멸종 위기라고 할 정도로 수가 적기 때문이다.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2300만∼500만 년 전에 해당하는 마이오세 기간에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다양한 종이 있었다”고 말했다. 절반이 넘는 고래가 이미 멸종했고, 일부는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와 화석은 고래의 ‘좋았던 옛 시절’을 보여 주는 타임캡슐이다.

과학동아 7월호는 반구대 암각화와 화석에 남은 한반도의 고래 이야기와 고래의 진화, 죽은 뒤의 심해 생태계, 돌고래 ‘제돌이’의 야생 방류 등 고래와 관련된 다양한 과학 이슈를 다뤘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반구대 암각화#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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