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암행어사가 표준과학을 이용한 감사관이었다고 하면 믿어집니까? 표준은 아주 오래전부터 국가의 근간이 되는 과학이었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암행어사 박문수가 표준과학을 이해하고 있는 감사관이었다니.
우리나라 표준연구의 중심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만난 강대임 원장은 원자력이나 항공우주과학 같은 분야는 단어만 들어도 뭐 하는지 알겠는데 ‘표준과학’은 뭐 하는 분야인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대뜸 ‘암행어사’ 얘기다.
“암행어사는 마패와 함께 유척이라는 놋쇠로 된 자를 휴대하고 다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요즘처럼 규격에 맞는 자 같은 것이 대중화되지 못해서 지방 수령들은 못된 마음을 먹고 도량형을 속여서 세금을 자의적으로 거둬들이기도 했지요. 암행어사는 각 고을에서 쓰는 자나 되가 정확한지 유척으로 확인해서 문제가 되는 고을 수령에게 벌을 내렸던 겁니다. 표준과학을 이용해 탐관오리를 조사한 감사관 역할을 한 거죠.”
예전에는 사회 안정을 위해 도량형 관련 표준이 중요했지만, 요즘에는 길이나 무게, 시간 등 표준을 얼마나 정확히 잴 수 있는가에 따라 새로운 과학 분야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신산업을 만들 수도 있단다.
강 원장은 “공기가 삶의 기본이 되는 것처럼 표준이라는 것도 과학의 근간”이라며 “표준과학이란 과학기술 연구 전반의 측정 기준을 제시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도 맡아 ‘일복’이 터진 강 원장에게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출연연 개혁 바람과 출연연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대한 의견을 묻자, “국민의 불신은 출연연과 연구자들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강 원장은 “출연연이 변화의 중심에서 자발적인 개혁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기 때문에 국민의 불신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며 “출연연과 출연연 연구자들도 그저 실험실 내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까지 고민하는 등 사회 현안에 적극 나서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들에게 연구원의 속사정에 대해 듣는 ‘원장이 말하는 출연연 톡톡(Talk Talk)’인터뷰 전문은 인터넷 ‘동아사이언스 포털(www.dongascience.com)’이나 스마트폰 ‘동아사이언스’ 앱을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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