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유근형 기자(오른쪽)가 지난달 25일 경기 지역 일원에서 진행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중독 예방을 위한 집중단속에 동행해 원재료의 신선도를 점검하고 있다.
쓰레기통을 뒤진 건 4년 만이었다. 지난달 25일 식품위생 점검이 실시된 경기 수원의 한 도시락제조업체 현장에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일일 시민감시단으로 단속에 동행한 기자의 첫 번째 업무다. 기자 초년병 시절 특종의 꿈을 안고 경찰서 휴지통을 뒤진 뒤 처음이었다.
수습기자 시절에는 마음이 간절했다. “문건을 꼭 찾아내야 해. 제발 나와라.” 하지만 이날은 마음가짐이 정반대로 달랐다. 원재료 껍데기에 있는 유통기한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발 안 나왔으면…. 이 공장은 부디 좋은 재료만 쓰는 착한 업체였으면….” ‘매의 눈’으로 단속 현장을 누비는 식약처 공무원들도 비슷한 희망에 매달릴 때가 많다고 했다.
식약처는 지난달부터 학교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여름철을 앞두고 학교 식중독 사고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부정행위를 했던 이력이 있는 업체들이 집중단속 대상이다.
“식약처에서 나왔습니다. 협조해 주시면 업무에 지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점검하겠습니다.”
정중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단속반이 들이닥친 것을 확인한 업체 사장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커피라도 한잔 하고 시작하시지요”라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단속반은 지체 없이 공장 외부 점검을 시작했다.
첫 번째 점검 대상은 식품 재료를 운반하는 냉동차량이었다. 냉동고의 온도가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기계부터 들여다봤다. 재료가 적당한 온도에서 이동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썼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쓰레기장 점검이 이어졌다. 함께 단속에 참여한 김정훈 식약처 경인청 주무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도 똥을 보면 먹은 걸 알 수 있듯이 쓰레기는 공장이 청결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시험지입니다.”
본보 유근형 기자가 도시락에 들어갈 부침개 반찬을 만드는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단속반원들은 작업장 내부를 점검할 때 보호옷, 덧버선, 두건까지 착용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조리대 점검을 위해 공장 내부로 향했다. 보호옷, 두건, 덧버선을 착용했다. 오후 1시 30분경. 작업장은 저녁 도시락을 만들기 위한 재료 손질에 한창이었다.
이날 점검을 지휘한 강권수 주무관이 저승사자처럼 업주를 불러 세웠다. 조리 기구를 보관하는 자외선살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사장은 “온풍기는 가동되기 때문에 살균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닐 거다”라며 사정했다.
강 주무관은 “식중독 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고 일갈했다.
더 중대한 문제도 있었다. 식약처에 보고한 메뉴대로 도시락을 제조하지 않은 것이다. 도시락의 내용물, 영양소를 포장지에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학교에 납품하는 도시락을 만드는 업체는 식품제조가공업소라 일반 음식점보다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식약처에 보고한 메뉴대로만 만들어야 하고 반찬을 보고 없이 바꿔서도 안 된다.
이 업체는 식품위생법 제10조 표시기준 위반으로 품목제조정지 15일 처분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가 지방자치단체에 행정처분을 권고하면 지자체가 결정을 내린다. 강 주무관은 “행정처분을 내릴 때 마음이 아프지만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선 최대한 냉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식약처 공무원들의 삶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더 고단해졌다. 정부는 ‘불량식품 근절’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범정부 차원의 근절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하루만도 수원, 군포의 업체 두 곳을 점검하고 청사에 돌아오니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다. 일선 공무원들은 각종 단속현장을 누비느라 출장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김 주무관은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고 했다. “불량식품 근절이 정부의 주요 과제가 되고 국민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만큼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매일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는 식약처를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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