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PC시장에서 5.1채널 스피커가 반짝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5.1채널이란 전면 2채널, 중앙 1채널, 그리고 후면 2채널 및 저음 전용 서브우퍼 0.1채널을 비롯한 총 6개의 스피커로 구성되는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특히 영화나 게임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5.1채널 스피커의 인기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설치의 불편함 이었다. 일단 스피커가 6개나 되다 보니 공간 확보가 필요한 데다 케이블이 달린 스피커를 여기저기 배치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PC스피커 시장은 다시 2채널, 혹은 2.1채널 제품이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5.1채널 사운드의 장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건만 된다면 2채널 스테레오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실감 나는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그래서 음향기기 업체들은 헤드셋에 5.1채널을 접목 시키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할 EASARS의 'TRAP'도 바로 그런 제품이다.
현재 국내에서 EASARS의 헤드셋은 디앤에스테크놀러지에서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이 회사는 헤드셋을 중심으로 한 게이밍 주변기기를 다수 유통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소믹(SOMIC) 브랜드 제품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ASARS TRAP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품질을 갖추고 있을지 살펴보자.
디자인과 착용감은 '합격'
TRAP은 덩치가 상당하다. 손으로 들어보면 제법 묵직하기까지 하다. 헤드셋 내부에서 5.1채널을 구현하기 위해 총 8개의 드라이브 유닛을 내장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어패드가 제법 푹신하고 헤드밴드 아래쪽에 완충재가 붙어있어서 착용감은 좋은 편이다. 다만, 헤드셋 자체의 무게 때문에 오래 쓰고 있으면 헤드밴드가 닿는 머리부분에 약간의 압박감이 느껴지긴 한다. 근데 사실 일정 수준 이상 헤드셋의 대부분이 이렇긴 하다.
TRAP의 마이크는 특이하게도 탈착식이다. 손으로 비틀면 가볍게 빠진다. 음성 채팅을 하지 않는다면 마이크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니 이런 설계는 칭찬할 만 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라면 양쪽 이어폰과 마이크 끝에 LED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음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지만 요즘 나오는 게이밍 주변기기는 이렇게 화려한 꾸밈을 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법이다. LED를 포함해 전반적인 디자인은 확실히 가격에 비해 고급스럽다 할 수 있다. 제품 구성을 살펴보면 헤드셋 본체 외에 전용 파우치를 함께 제공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동이 잦은 게이머라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USB 인터페이스와 채널별로 음량 조절 가능한 리모컨
그 외에 TRAP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면 인터페이스다. 흔히 쓰는 3.5mm 오디오 잭이 아닌 USB를 통해 PC와 연결한다. USB 인터페이스 기반 헤드셋의 장점이라면 PC에 달린 사운드카드와 상관 없이 균일한 성능을 낸다는 점, 그리고 완전한 디지털 데이터만을 PC와 주고 받으므로 잡음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TRAP을 PC에 꽂으면 시스템은 TRAP을 별개의 사운드카드로 인식한다.
물론 이런 방식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품의 가격이 비싸지는 데다 PC 외의 기기에서는 쓸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TRAP은 제조사에서 PC 게이머들을 위한 전용 기기로 홍보를 하고 있으니 이 점을 크게 아쉬워 할 필요는 없겠다.
케이블 중간에는 각종 조작을 할 수 있는 리모컨이 달려있다. 전체 음량 조절 외에도 전방과 후방, 중앙, 서브우퍼 채널의 음량을 각각 조절할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5.1채널 헤드셋 다운 인터페이스의 구성이다. 음량 조절 외에 전반적인 음색을 바꾸는 게임 모드와 영화 모드 전환 스위치도 있다. 게임 모드에서는 각 채널의 분리가 확실해지고 각종 효과음이 또렷해지는 반면, 영화 모드에서는 공간감이 강해지고 한층 풍부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 콘텐츠의 종류와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될 것 이다. 다만 리모컨이 제법 큰데, 이를 특정 장소에 고정 시킬 수 있는 클립이 달려있지 않은 점은 약간 아쉽다.
영화와 게임을 즐길 때 만족도 높아
그렇다면 실제로 들어본 EASARS TRAP의 소리는 어떨까? TRAP을 제대로 쓰려면 일단 PC에 전용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본체에 제공된 CD를 넣거나 유통사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설치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력 모드를 6채널(5.1채널)로 설정하고 입력 모드는 콘텐츠의 종류에 따라 바꿔주면 된다. MP3 음악 파일의 경우는 2채널, 일반 동영상은 2채널, AC3나 DTS 음향이 수록된 동영상을 감상하거나 5.1채널을 지원하는 게임을 할 때는 6채널로 맞춰주는 식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는 각 채널이 제대로 출력 되는지도 테스트 할 수 있다. TRAP를 착용하고 테스트를 해보니 전방 좌우, 후방 좌우, 중앙, 서브 우퍼 모두 깔끔하게 음향 분리가 되어 출력 되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은 TRAP로 각종 콘텐츠를 즐기며 사운드를 들어봤다. 영화와 음악, 게임 등을 골고루 번갈아가며 즐겨본 결과, 이 제품의 전반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것은 역시 영화와 게임이었다. 등장인물의 대사가 상당히 또렷하게 들리고 각종 효과음이 입체감 있게 출력되어서 특히 액션 영화나 FPS 게임을 할 때 높은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음악 감상을 할 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고음의 날카로움이 다소 부족한 편이고 저음도 그다지 잘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음과 고음 사이의 중음도 두터운 편이 아니다. 소리 자체가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지만 뭔가 확 잡아 끌만한 개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최소한 음악을 감상할 때는 그렇다. 절대 다수의 음악이 2채널 스테레오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EASARS TRAP은 아무래도 영화나 게임을 위해 태어난 제품이 맞다.
EASARS TRAP의 구매 가치는?
EASARS TRAP는 제품 디자인이나 기능 면에서 장점이 많은 제품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 한대로 PC에서 만 사용이 가능한 점이나 음악 감상 시에 소리가 다소 평범하게 들린다는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 제품의 전반적인 컨셉을 생각해 봤을 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제조사에서도 이 제품은 게이밍 헤드셋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실제로 게임에서 만족할만한 성능을 보이기 때문이다. 덤으로 영화 감상 시에도 만족도가 높다. '하이파이' 보다는 'AV'적인 성향에 가까운 제품이라 할 수 있다. EASARS TRAP는 2013년 7월 현재 인터넷 최저가 기준 7만 4,000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이 수준의 가격에 이 정도의 성능과 고급스러움을 제공한다면 구매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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