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는 병원’ 이번엔 성공?… 환자 60% “만족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9일 03시 00분


■ 정부, 예산 100억 들여 전국 13곳서 시범사업… 일산병원 둘러보니

‘보호자 없는 병원’제도를 시범 실시하는 13개 병원 중 한 곳인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가족이나 간병인 대신 간호사들이 노인 환자를 수발하고 있다. 고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보호자 없는 병원’제도를 시범 실시하는 13개 병원 중 한 곳인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가족이나 간병인 대신 간호사들이 노인 환자를 수발하고 있다. 고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7년 전 알코올성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심장도 나빠졌다.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 후 매년 3, 4회 입원 치료를 해야 했다. 아내는 당뇨합병증으로 투병 중이고 아들은 학생이었다. 간병인을 써야 하는 상황. 하지만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결국 혼자 버틸 수밖에 없었다.

박을균 씨(50)의 이야기다. 그는 얼마 전 구토와 하혈이 심해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81병동에 다시 입원했다. 암과 중증질환자들이 단기 입원해 치료받은 뒤 퇴원하는 병동이다. 25일 그를 만났다. 창밖 풍경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간호사가 10분마다 와서 일일이 체크하니 믿음이 가요. 이런 간병 서비스라면 만족합니다.”

식사, 머리 감기, 목욕 돕기는 국내 병원에서 간병인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병동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한 팀이 돼 이 일을 한다. 질병의 경중에 따라 10분∼1시간 단위로 환자 상태를 점검한다. 1일부터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운영하면서 달라진 모습이다.

환자들에게 간병비 부담은 실로 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한 해에만 간병비로 2조 원이 쓰였다. 가족이 간병하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이 비용은 4조4000억∼5조 원으로 껑충 뛴다.

정부가 병원이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호자 없는 병원’제도를 적극 추진 중이다. 병원급 이상 병원 13곳에서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일산병원도 그중 한 곳이다. 시범사업은 내년 말까지 진행된다. 정부 예산만 100억 원 정도가 들어간다.

사실 이 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닻을 올렸다. 2007년과 2010년, 각각 시범사업도 진행했다. 간병인 한 명이 여러 환자를 맡거나 간병 비용을 환자에게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현 정부는 이 방식이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병동 시스템을 바꾸기로 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팀으로 엮어 운영하는 일본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이를 ‘포괄 간호서비스’라 부른다.

진영 복지부 장관은 최근 “의료비 부담 때문에 국민이 빈곤해지는 일은 없도록 정부가 책임지고 노력하겠다.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는 병원이 보편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얘기다. 정말로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환자들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 일산병원 81병동 환자들이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점, 전문 간호인력의 간병이라 믿을 수 있다는 점을 많이 거론했다. 이 제도를 정식 도입하면 건강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는 설명에도 “합리적인 수준이라면 괜찮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직장암으로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는 김중구 씨(76)는 “한밤중에 왜 가족을 모두 내보내나. 서운하다”고 말했다. 보호자 없는 병원 제도에서 가족들은 면회시간에만 병실에 들어올 수 있다. 일산병원은 오후 8시 이후 가족의 출입을 가급적 금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제도라고 오해하는 환자도 있었다. 한 환자는 “내가 왜 저소득층의 대우를 받느냐. 싫다”며 다른 병동으로 가 버렸다.

홍나숙 81병동 수간호사(41)는 “현재 환자들의 만족도를 조사 중이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60% 정도가 크게 만족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프라 구축은 가장 시급한 문제다. 우선 간호 인력 확보부터가 쉽지 않다. 일산병원은 간호사 52명과 간호조무사 20명이 더 필요하다. 간호사는 임용 대기자를 교육시킨 뒤 투입해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간호조무사는 9명밖에 채우지 못했다.

그나마 이 정도면 나은 편에 속한다. 지방의 청주의료원과 안동병원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시범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하루 3교대로 강행군하는 간호 인력을 위한 인센티브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복지부는 가급적 간병비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려면 최소한 한 해 3조400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국민의 동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모든 병원, 모든 진료과에서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2주 내외로 입원 치료할 환자만 대상으로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나 어린이, 전염병 환자는 제외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1, 2년 안에 모든 병원과 진료과로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고양=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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