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과로로 쓰러져 사표 내고 여행… 전기 없는 섬에서 ‘진짜 인간관계’ 배워
‘디지털 디톡스’법인 설립 펠릭스씨
그와 연락이 닿기는 쉽지 않았다. 휴대전화 통화는 자동응답으로 넘어갔으며 남겨 둔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수차례 e메일을 보낸 끝에 짧은 답신이 왔다. 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캠프에서 보자고 했다. ‘e메일이나 전화보다는 얼굴을 보고 나누는 대화가 편하다’는 추신과 함께.
지난해 ‘디지털 디톡스’라는 비영리법인을 만든 레비 펠릭스 씨(28·사진)는 요즘 미국에서 뜨거운 인물. 뉴욕타임스(NYT) 뉴요커 폭스뉴스 NPR 등 미 주류 언론이 그의 활동에 주목한다. 미국에서 ‘현대인들이 중독된 디지털의 독(毒)을 빼자’는 새로운 운동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에 망가진 인생”
7월 26일 오후 7시부터 열린 캠프에서 그를 만났다. 펠릭스 씨는 손님들을 맞을 준비가 마무리되자 뜻을 같이하는 자원 봉사자 30여 명과 함께 손을 잡고 일종의 의식을 치렀다. 캠프의 모토인 ‘누가 신나는가(Who's excited)’를 모두들 외쳐 대면서 한 명씩 나와 즐거운 이유와 감사하는 대상을 밝혔다. 마지막 차례가 돌아오자 그는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고맙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에서 심리학과 민속음악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벤처기업인 코즈캐스트의 부사장으로 2009년까지 일했다. 지금도 잘나가는 기업인 이곳에서 그는 한순간도 디지털 기기에서 눈과 손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기업의 자선 및 기부 활동을 위한 디지털 전략과 광고 캠페인 전략의 자문에 응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동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것이 그의 주 업무였다. 그는 “잠든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이폰 통화와 e메일과 SNS 체크 등 온라인 세상에 묶여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과로로 쓰러졌다. 사무실에서 3일 동안 목에서 피를 토하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그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뭔가’ 하는 회의에 빠졌다고 밝혔다. 퇴원 후 그는 회사를 무작정 그만두고 여자친구인 브룩 딘과 2년여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그렇지만 디지털은 중동과 같은 사막지역이나 태국 미얀마와 같은 밀림에서도 그의 꽁무니를 쫓아왔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이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사회 변화와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커뮤니티 리더들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 작업은 캄보디아의 외딴 섬에 들어가면서 끝을 보게 된다. 그의 동영상 올리기도 이날로 막을 내렸다.
섬 주민은 9명에 불과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식수는 빗물로 해결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죠. 인터넷과 문명의 이기를 전혀 누릴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인 6개월을 이 섬에 머물렀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는 왜 디지털 디톡스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짧게 “그 섬을 내가 살았던 세상에 가져오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 “엄만 나보다 스마트폰이 더 중요해?” 네 살 아들 항변에 정신 번쩍 들었죠 ▼ 시민단체 ‘리부트’ 매니저 셰비츠씨
막연하게 그려 온 구상을 좀 더 구체화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년여 만에 돌아온 ‘속세’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친구들이나 옛 동료와 식사 자리를 가질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어요.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모두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그저 같이 있는 것일 뿐, 관심은 온라인 세상에 가 있고 현재 있는 곳에서의 대화는 겉돌았죠. 심지어 야외 캠핑을 가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질 못하더군요.”
디지털에 갇혀 있으면 인생이 피폐해질 뿐 아니라 끝장이 날 수 있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자 그는 곧바로 ‘디톡스’를 위한 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캠프 그라운디드(Camp Grounded)’는 며칠 동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독을 뺄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한 번 참가한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거나 다음 번 캠프에 다시 참가하곤 한다. 펠릭스는 “플러그를 뽑아 디지털 세계에서 절연할 기회가 있다면 심리적 중독이나 육체적 습관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결의 세계를 열수 있다”고 말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뉴욕에 거점을 둔 비영리 시민단체인 리부트(Reboot)의 전국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를 맡고 있는 타냐 셰비츠 씨(42·사진). 리부트가 3월 1일 주최한 ‘디지털기기 안 쓰는 날’ 행사 때 그가 내건 슬로건은 ‘아들과 기차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등에서 16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해 온 그녀는 올해 초 이곳에 합류했다. 한시라도 온라인 정보에서 눈을 뗄 수 없고 바깥세상에 귀를 열어 둬야 하는 기자였던 그가 디지털 기기와 멀어지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했다.
7월 26일 만난 그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생활의 일부분이 돼 버린 스마트폰 인터넷 등과 결별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 뒤 “살이 찌면 다이어트를 하고, 음주가 과하다 싶으면 절주를 하듯이 균형을 잡는 작업의 일환일 뿐”이라고 답했다.
네 살, 열 살짜리 아들을 둔 엄마로서 그가 ‘디지털 디톡스’ 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역시 자녀 때문이었다.
“한번은 네 살 된 아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옆에서 절 붙잡고 계속 부르는 거예요. 그때 스마트폰에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연달아 울려서 만지작거리며 보고 있는데 아들이 한마디 외치면서 울음을 쏟아 내더군요. ‘엄마는 나보다 스마트폰이 더 중요해’라고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침 절친한 지인이 함께 디지털문화의 폐해를 바로잡는 활동을 해보자고 제안해 리부트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임계점)를 넘었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나도 그랬지만 모든 신호음에 곧바로 대응해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셰비츠 씨는 요즘 네 살 아들이 좋아하는 기차놀이를 자주 한다. 식탁에 절대 스마트폰을 올려놓지 않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시간 등 아이들과 있을 때는 스마트폰의 사용을 자제한다는 원칙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이후로 아이들이 달라졌느냐고 물었다. “열 살 아들이 마인크래프트(인터넷 게임)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요즘은 많이 줄었어요. 결국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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