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당뇨병학회(IDF)는 대사증후군을 한국과는 약간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복부비만이 있으면서 나머지 두 가지 위험요소를 동반하는 증상’이라고 말한다. 대사증후군의 다른 네 가지 요소에 비해 복부비만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뇨병학회는 복부비만이 당뇨에 가장 위협이 되는 요소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 복부비만, 당뇨의 주범
실제로 복부비만은 당뇨의 주범으로 꼽힌다. 복부의 지방조직은 유리지방산 분비를 늘린다. 이 물질은 간이 포도당과 중성지방을 생산하는 것을 촉진시킨다. 반면 인슐린이 혈중의 포도당을 잘 흡수하는 작용은 방해한다. 인슐린저항성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혈당이 높아지고 유리지방산이 늘면 췌장은 인슐린을 지나치게 많이 분비한다. 고인슐린은 염분을 재흡수하고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에서 고혈압과 고혈당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복부지방의 또 다른 문제는 염증 세포가 많다는 점이다. 염증 물질은 포도당 수치를 조절하고 지방산의 분해를 돕는 ‘아디포넥틴’이란 단백질 생산도 줄인다. 이렇게 되면 피가 끈적끈적해지면서 혈전이 생기기 쉽다.
물론 비만이라고 당뇨 위험이 같은 건 아니다. 비만이면서 대사증후군의 다른 위험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는 환자는 더욱 당뇨에 주의해야 한다. 똑같은 수준의 비만 환자라도 인슐린 저항성이 없고 대사작용이 정상이라면 당뇨로 발전할 가능성이 32%가량 줄어든다.
○ 마른 비만, 당뇨 주의
겉보기에는 뚱뚱하지 않고 체질량지수도 정상이지만 내장지방이 많은 ‘마른 비만’도 당뇨로 발전할 수 있다. 마른 비만은 체중이 정상 체중과 근육량이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활동에 비해 신진대사가 낮다. 그만큼 내장 지방을 축적할 확률이 높다.
마른 당뇨가 역으로 대사증후군으로 발전하는 일도 적지 않다. 당뇨 환자들은 근육 감소가 일어날 확률이 높고 이는 대사증후군의 위험요소들을 증가시킬 확률을 높인다.
최경묵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는 ‘한국형 마른 비만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입증했다. 최 교수팀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근육감소증 발병률은 15.7%로 일반인(6.9%)의 두 배 이상 높다. 최 교수는 “당뇨로 인한 근육 감소는 대사증후군의 위험요소를 대부분 악화시킨다”며 “결국 ‘당뇨→대사증후군→당뇨 악화’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의 근육감소증 위험이 더 높았다. 60대 이상 당뇨 남성의 발병률은 19%였지만 여성은 27%에 이르렀다. 또 근육량이 적은 동양인은 체질적으로 서양인에 비해 근육감소증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방흡입하면 된다?
그렇다면 지방만 제거하면 당뇨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방흡입수술 같은 방법으로는 당뇨 위험성을 낮출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당뇨 환자를 중심으로 지방흡입술을 받은 사례가 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연구팀에 따르면 지방흡입술을 받은 당뇨 환자들은 일반인 평균(9.1kg)보다 많은 약 10.5kg의 지방을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수술 10주 뒤 근육, 간, 지방조직의 인슐린 반응 정도를 측정해보니 변화가 없었다. 지방이 줄었지만 인슐린 기능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혈중 염증 물질들도 그대로였고 아디포넥틴 농도도 여전히 낮았다. 결국 혈압, 혈당, 인슐린, 지질 등 심혈관계 질환 위험 인자들이 좋아지지 않았다.
지방흡입술 효과가 미미한 이유는 많은 양의 지방을 제거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피하지방을 없애기 때문이다. 당뇨를 유발하는 내장비만은 수술로 제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살을 빼는 것으로는 당뇨, 대사증후군의 위험을 크게 줄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정상 체중이라도 근육량과 지방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내장지방을 잡으면 대사증후군의 핵심요소를 제거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당뇨의 위험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 ::
복부비만, 고혈압, 혈당장애, 고중성지방, 낮은 HDL콜레스테롤 등
5가지 위험요소 중 3개 이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증상. 몸 안의 오폐물(汚廢物)을 내보내고 자양분을 다시 섭취하는
대사(代謝)기능에 문제가 생겨 나타난다. 뚜렷한 원인, 특히 유전적인 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8년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고 국내에서는 2009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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