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개발도상국 과학기술 개발 ‘도우미’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기술연구기관 설립을 돕는가 하면 자원 분석 조사, 제조 기술 이전 등 다양한 형태의 ‘공적개발원조(ODA)’가 이뤄지고 있는 것.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외교적 반사이익을 얻는 데 일조하고 있다.
국내 ODA 규모는 1987년 2350만 달러에 그쳤지만 2012년 약 15억5000만 달러로 66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출연연의 과학기술 ODA는 물품 원조보다는 기술 이전이나 인재 육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개도국들의 관심도 뜨겁다. 장기적인 경제 체질 개선이나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과학기술 ODA ‘수혜국’이던 우리나라가 ‘지원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국내 과학기술 역량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출연연 ‘맏형’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현재 베트남에 KIST 모델을 벤치마킹한 ‘V-KIST’ 설립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50여 년 전 미국 원조로 설립된 첫 ODA 수혜 연구기관으로서 그동안 축적된 운영 노하우와 연구 역량을 개도국에 다시 돌려주고 있는 것.
베트남의 경제 구조는 국내총생산(GDP)에서 경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1970년대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경제 성장을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중화학공업 육성이 필요한데 그 기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절실하다. 1966년 설립돼 TV나 전화기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서 국내 산업구조를 바꾸는 데 기여한 KIST 모델이 적합하다.
KIST는 V-KIST 설립 지원 후에는 기술이전센터 운용 요령과 선진국에서 이미 개발된 기술을 역추적해 원리를 파악할 수 있는 ‘역엔지니어링’ 노하우 등도 전수할 예정이다.
한국지질연구원은 자원 개발을 위한 정보 분석에 팔을 걷었다. 2010년부터 동티모르 수아이 지역 내 자원부존지역 150km²를 조사해 만든 정밀 지질도와 관련 자료를 올해 6월 동티모르에 전달했다. 이곳은 부존자원이 풍부해도 제대로 정리된 정보가 없어 자원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한국인 지질 전문가 18명이 현장에 투입돼 연구 방법과 지질조사장비 등을 제공해 정밀 지질도를 완성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전력 공급이 끊겨도 저온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상변화물질(PCM)’ 제조 기술을 인도네시아에 이전했다. 이 기술은 그동안 비싼 유류 비용 때문에 냉동트럭 운용이 어려웠던 인도네시아에 전력 소비량이 30% 적은 ‘PCM 냉동트럭’이 운행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김규한 지질연 원장은 “우리나라도 1970년대 영국으로부터 지질조사 무상교육을 받고 성장한 만큼 이제는 우리가 받은 만큼 개발도상국에 돌려줘야 할 때”라며 “이 같은 ODA 활동은 국가 간 긴밀한 관계 구축뿐 아니라 국격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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