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안방에서 의사를 만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2일 03시 00분


대구가톨릭대병원 의사가 원격영상진료실에 앉아 다른 지방에 있는 환자를 원격 진료하는 모습. 동아일보DB
대구가톨릭대병원 의사가 원격영상진료실에 앉아 다른 지방에 있는 환자를 원격 진료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2015년부터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논란이 뜨겁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찬성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의료산업의 융합과 경쟁력 측면에서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당뇨병 약이 다 떨어져 가는 환자가 인터넷 또는 모바일로 사이버 병원을 이용해 병원을 찾는 수고 없이 약을 받고 또 건강 상태를 원격으로 모니터하기도 하며 병원 방문 예약까지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예기치 않았던 급성 대동맥류 파열 환자가 모바일 앱을 통해 사이버 병원을 방문해 신속히 응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과 준비된 의사가 있는 병원을 안내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원격진료 반대론자들은 대형 병원들이 ‘사이버 병원’이라는 무기까지 장착하면 환자가 그쪽으로만 쏠릴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동일 환자군에 대해 똑같이 경쟁하는 의료 전달 체계에서 기능 분담을 통해 효율적인 접근 체계로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이렇게 되면 원격진료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즉, 급성이건 만성이건 중증 환자는 인력 공간 장비 등 의료자원을 24시간 충분히 준비하고 있는 대형 병원으로 돌리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질환 환자들을 1, 2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계로 돌린다면 의료계 밥그릇 중복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원격진료가 의료의 질을 보장하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사이버 병원의 역할은 오프라인 병원에서의 역할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환자 중심으로 각종 의료기관들이 순발력 있게 초기 대응을 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되면 현존하는 오프라인 병원 의료의 질도 높아질 것이 분명하므로 의료 사고도 줄어들 것이고 동네 병원은 각자 수준에 맞는 진료와 역할이 객관화되어 재평가될 것이다.

병원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보다가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를 줄일 것이고 환자는 소통할 곳이 많아져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 개인정보 보호, 진료의 범위와 적법성, 수가 체계 등 정부 차원에서의 제도 개혁이 추가된다면 순기능이 훨씬 많을 것이다.

원격진료는 의료 전산화라는 거대한 흐름의 하나일 뿐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건강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을 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보편화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의 정보통신혁명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2015년부터 과거 손으로 쓰던 의무기록을 전자화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를 구축하는 의료기관에는 200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지원하며 2018년까지 15억 달러(약 1조5000억 원)를 투자하여 2019년에는 의료기관의 90%가 전자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무기록 전산화 수준은 한국이 미국보다 낫다. 하지만 예산 반영과 관심은 매우 열악하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최근 5년간 전산 개발 관련 비용이 200억 원(서울대병원 결산 자료)에 불과했다.

의료 정보 전산화 분야는 이 같은 의무기록 전산화를 비롯해 바이오 마커, 개인맞춤형 의료, 유전자 정보, 재생 의료, 의료용 로봇, 전자 의무기록(EMR·Eletronic Medical Record), 의학영상정보 전달 시스템(PACS·Picture Archiving & Communication System), 병원 운영 시스템 전산화, 스마트 병원 구축, 사이버 병원, 원격진료 모델, 소형 의료단말기 산업 등 셀 수 없이 많은 분야가 완성되었거나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의료정보의 전산화 과정을 살펴보면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EMR와 PACS의 도입을 1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종이가 없는 병원’을 창조해 냈으며 영상전송 시스템을 통해 일반 컴퓨터 모니터로도 충분한 해상도로 정확한 판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각 병원에는 의사 자신도 알아볼 수 없는 암호형 글씨로 인한 소통 부재가 없어졌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전자 기록들이 이제 빅 데이터가 되어 의료 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새로운 수많은 결론들을 추출해 낼 수 있는 무기 창고가 되었다.

현재 1단계 전산화 작업은 데이터의 구조화 및 이용의 편리성, 보다 높은 완성도 추구 등의 업그레이드 과정을 남겨놓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의 의료정보통신 혁명은 무엇일까. 다음 회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원격진료#의료법 개정안#사이버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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