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이라는 말이 어느새 옛말이 되고 있다. 날로 심해지는 ‘중국발 스모그’ 때문이다. 특히 중국산 스모그에 가득 들어있는 미세먼지는 한국인의 기관지와 폐, 눈, 피부를 크게 위협하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중국 스모그가 한반도 상공까지 나타난 원인은 크게 두 가지. 먼저 베이징, 하얼빈 등 중국 동북지방 주요 도시에서 최근 10μm(마이크로미터) 이하 미세먼지의 농도가 매우 심해졌다. 올해 1월 베이징의 미세먼지 농도는 m³당 993μg(마이크로그램)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인 m³당 25μg의 약 40배에 달하는 수준.
199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크게 늘린 여파다. 실제로 중국은 에너지 사용에서 석탄 의존도가 70% 이상에 이른다. 난방 수요가 증가하는 겨울철에는 중국에서 스모그를 거의 매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중국에서 발생한 스모그는 ‘편서풍’을 타고 한국 하늘로 날아온다. 지구 대기순환의 영향으로 한반도가 위치한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는 연중 내내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람이 분다. 게다가 겨울철에는 시베리아에 형성된 차가운 북서풍이 중국 북동부 대기권을 통과해 한국 하늘로 밀려온다. 중국 내륙에서 발생한 대기오염 물질이 매년 한국을 뒤덮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호흡기, 피부, 눈 건강에 치명적
스모그가 신체에 위협적인 이유는 그 속에 포함된 미세먼지, 납 카드뮴 등 중금속, 각종 화학물질 때문이다. 호흡기, 피부, 눈처럼 외부에 노출되는 부위에 피해가 집중된다.
특히 크기가 2.5μm 이하인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이 먼지는 코나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는다. 따라서 폐, 심장 등 호흡기에 직접 도달할 수 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초미세먼지 비율이 낮은 봄철 황사에 비해 겨울철 스모그가 우리 몸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고 진단한다.
이진국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입자가 작은 초미세먼지는 모세혈관을 타고 호흡기로 침투해 협심증, 심근경색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화학물질이 가득 묻어 있어 염증을 덧나게 만들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스모그는 기관지염, 비염, 천식 등 만성질환자와 노인에게 더욱 위험하다. 이미 만성질환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이 스모그에 장기간 노출되면 호흡기능 전반이 악화돼 호흡곤란이 일어날 수 있고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국내외 연구에서는 스모그가 폐암, 심장병, 폐렴 사망률도 크게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모그에 함유된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은 피부건강에도 치명적이다. 특히 아토피 피부염을 크게 악화시킨다. 환경부, 삼성서울병원,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공동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미세먼지가 m³당 1μg만 증가해도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하루 전보다 평균 0.4% 악화되고 화학물질인 벤젠이 0.1ppb(10억분율) 증가하면 증상이 2.74%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마다 아토피 피부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원인도 다르지만 특히 겨울철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증상이 악화됐다. 미세먼지는 안과질환도 유발한다. 특히 눈꺼풀 안쪽과 안구 흰 부분을 덮고 있는 미세한 피부막인 결막에 염증이 생기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가장 흔하다. 미세먼지에 가득 묻은 중금속은 심한 염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외출 때 ‘황사마스크’ 착용
스모그가 심한 날에는 아예 문밖 나들이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미세먼지 접촉 빈도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실내에 있을 때는 창문을 닫아거는 일을 잊어선 안 된다. 또 환기는 대기의 움직임이 커서 미세먼지 농도가 떨어지는 정오 무렵에 하는 게 좋다.
만약 외출을 해야 한다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증한 ‘황사마스크’라는 명칭의 초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써야 기대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외출 뒤 돌아와서는 얼굴, 입, 코 등 피부를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물을 많이 마셔 기도 및 기관지의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건조한 호흡기는 감기, 천식, 비염 등 호흡기 질환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 스모그가 잔뜩 낀 날에는 콘택트렌즈 착용을 삼가는 것이 좋다. 렌즈에 달라붙은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이 눈 점막을 자극하고 염증을 유발한다. 안구 건조증이 심하다면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어주어야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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