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 타이어 제조사인 ‘굿이어’는 2003년 경쟁사에 밀려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출구는 경쟁력 있는 신제품 개발. 그래서 찾은 곳이 미국 산디아 국립연구소였다. 이곳의 슈퍼컴퓨터로 실시간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 결과 타이어 설계기간은 3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연구개발과 품질관리 예산도 40%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
주요 선진국들이 앞다퉈 슈퍼컴퓨터 분야 육성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는 순수 연구개발에도 쓰이지만 산업분야에서 활용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현재 슈퍼컴퓨터 경쟁에서 앞서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올해 6월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순위를 매기는 ‘톱500’에서 중국의 ‘톈허-2’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전체 500대 중 절반이 넘는 252대가 미국의 슈퍼컴퓨터이며 10위 안에도 7대나 포진해 있다. 이런 성과는 정부 차원에서 20년 넘게 꾸준히 슈퍼컴퓨터 연구개발 프로그램인 ‘NITRD’를 진행한 덕분이다.
미국은 기업의 슈퍼컴퓨터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하이오 슈퍼컴퓨팅센터(OSC)는 오하이오 주에 있는 2800여 철강·플라스틱 관련 업체들에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낙후된 산업의 혁신을 이끌었고, 텍사스 어드밴스트 컴퓨팅센터(TACC)도 3000여 에너지 업체를 대상으로 슈퍼컴퓨팅 지원 서비스인 ‘STAR’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재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일찍부터 슈퍼컴퓨터 관련 연구를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기술이 애플의 아이폰 신드롬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정부가 앞장서 슈퍼컴퓨터센터를 설립하고 집중 투자해 아시아 최초로 자체적인 슈퍼컴퓨터 제조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이후 일본 정부는 톱500 중 4위에 오른 자국 슈퍼컴퓨터 ‘K’를 민간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닛산, 도요타 등 자동차 업체들은 충돌 실험을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해 실험용 차체와 더미 인형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슈퍼컴퓨터 분야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역시 산업계의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상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산업체슈퍼컴퓨팅팀장은 “상하이 슈퍼컴퓨터센터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기업 서비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톈허-2’를 보유한 중국은 이를 통해 중국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도 슈퍼컴퓨터 ‘세계 7대 강국’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제1차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육성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투자와 전문인력 교육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특히 우리나라의 슈퍼컴퓨터 기업 활용도는 20%에 불과하다.
이식 KISTI 슈퍼컴퓨팅전략실장은 “우리나라는 슈퍼컴퓨터 기능이 기초 연구자들을 위한 방향으로 맞춰진 경우가 많아 산업계의 활용도가 높지 않다”며 “민간기업 맞춤용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중국처럼 국제 수준의 자체 기술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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