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교수팀은 태아의 피부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와 결합시켜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최초로 만들어 생명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는 난자를 쓰지 않고도 분화가 끝난 체세포를 분화 이전 단계로 되돌리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가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이후 주춤하는 동안 선진국들은 줄기세포 시장 선점을 위해 이처럼 치열하게 뛰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도 줄기세포와 이를 활용한 신약 개발 시장 경쟁에서 뒤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이달 초 ‘생명기술(BT) 분야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희귀난치질환’ 세포 치료제 개발.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망막 질환, 청력 장애 등을 앓고 있는 환자는 우리나라만 해도 50만 명에 달한다. 실제로 전 세계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8년 60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군다나 줄기세포를 이용한 희귀난치질환용 치료제 개발은 사실상 미개척지와 다름없기 때문에 선진국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줄기세포 기술을 토대로 신약 개발에 나선다고 해도 실제로 상용화에 성공할 확률은 6%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김현수 한국연구재단 생명공학단장은 “예전에는 경험에 의존해 특정 물질의 효과만 생각하고 신약 개발을 시작했다가 비임상·임상 단계에서 부작용이 발견돼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타 물질과의 유기적인 관계까지 파악하지 않아 벌어진 실수”라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이달 21일 충북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에서 설치돼 가동에 들어간 ‘신약개발지원센터’가 과거의 주먹구구식 신약 개발 과정을 바꿔 상용화 성공률도 상당히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약개발지원센터는 기초연구 성과가 임상시험을 거쳐 상용화까지 매끄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중개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야와의 협업으로 상업화를 위한 ‘목표 물질’을 연구 시작 단계부터 선정하고, 개발 단계마다 관련 전문가와 고급 장비를 지원해 중도 하차하는 일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독성이나 유효성 시험에 동물 대신 줄기세포를 사용함으로써 비용 절감과 연구 기간 단축, 윤리 문제 해결까지 ‘일석삼조’ 효과도 노리고 있다. 현재 실험실에서 희생되는 시험동물은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100만 마리에 이른다.
장종환 신약개발지원센터장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그동안 복제약으로 불리는 제네릭 위주로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신약 개발 국가로 한 걸음 더 도약할 때가 됐다”며 “정부가 줄기세포와 중개 연구 강화에 의지를 보인 만큼 난치병 환자를 위한 치료제 개발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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