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은행원 김은선(가명·여) 씨는 최근까지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귀자’는 상사의 고백을 거절했더니 그 이후 괴롭힘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고백 전에는 없던 커피 심부름은 기본이고 ‘남자가 많다’, ‘얼굴 예쁜 것만 믿고 일을 안 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내기도 했다. 김 씨는 스트레스성 위염과 대인기피 증상까지 생겼다.
스트레스가 극에 이를 즈음 김 씨는 지인의 권유로 한의원을 찾았다. ‘디톡스 요법으로 화병을 다스린다’는 한의사의 말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해독 침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고 한약을 두 달가량 복용한 뒤 우울감이 몰라보게 나아졌다.
김 씨는 “한약에 뭔가를 넣은 게 아닐까 고민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스트레스가 심해진 뒤 불규칙해졌던 월경 주기도 나아졌다. 한의학의 도움으로 직장생활을 이겨나갈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출산 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새내기 엄마, 취업준비생까지…. 김 씨처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다양한 치료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
디톡스 앞세운 한의학
한의학에서 디톡스 요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 간 해독, 장 청소, 해독 침, 왕 뜸, 디톡스 다이어트 등 치료법도 다양하다. ‘디톡스’라는 개념은 한의학에서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유해물질을 몸 밖으로 빼낸 뒤 체질을 개선시키는 방식의 치료를 수천 년 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오장육부의 기능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담과 어혈로 규정한다. 이런 독소들은 부절적한 식사와 생활습관, 스트레스가 축적돼 생긴 것으로 본다.
특히 독소들은 해독과 배출을 담당하는 간, 신장 등의 장기에 쌓여있다고 한다. 이진욱 명동선재한의원 원장은 “과거 한의학이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허약해진 몸을 보하는 치료에 주력했다면 현대에는 해독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의학의 스트레스 치료에는 크게 ‘공(攻)’과 ‘보(補)’라는 두 가지 개념을 사용한다.
공은 말 그대로 공격적 치료를 말한다. 유해물질과 독소를 최대한 빨리 몸 밖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간 해독 한약, 설사를 유발해 굳은 장을 풀어주는 생장요법, 혈 자리를 자극해 어와 혈을 풀어주는 침 치료 등이 대표적이다.
공격적 요법을 받아들일 만한 체력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먼저 보완적 치료가 필요하다. 몸의 기운을 되살려 어와 혈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개념이다. 공진당 쌍화탕 등을 포함한 다양한 보약, 왕 뜸, 원적외선 치료가 여기에 속한다.
최근에는 ‘덜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디톡스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한의사들이 늘고 있다. 소화기를 완전히 쉬게 해 그 에너지가 면역계나 내분비계에서 작용하도록 유도하면서 몸 전체의 기운을 재생시킨다는 원리다.
이 원장은 “5년 전만 해도 스트레스 우울증 환자는 50대 갱년기 여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20, 30대 젊은 스트레스 환자가 부쩍 늘었다”며 “처음에 ‘한방이 과연 스트레스를 치료할 수 있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던 젊은 환자들이 디톡스 치료를 받고 삶의 원동력을 얻어가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과학적 측정 가능한 서양 의학
서양 의학에서는 과학적인 검사와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 자가 설문조사, 바이오피드백 검사, 코르티솔 호르몬 함량검사 등 눈으로 드러나는 수치로 자신의 스트레스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낮은 단계의 스트레스까지 측정해 예방적 치료를 할 수 있다.
바이오피드백은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몸의 반응 속도를 측정하는 검사다. 먼저 편안한 상태에서 이마와 팔꿈치 아래쪽에 전극을 붙여 근육의 긴장도를 측정한다. 손가락에서는 체온과 땀이 분비되는 정도를 측정한다. 이후 긴장 상황을 연출해 이 수치를 비교한다. 평시와 긴장했을 때의 결과 차이가 클수록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코티르티솔 검사는 소변에 포함된 호르몬의 함량을 지수화하는 검사다. 스트레스로 인해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가슴샘(흉선)과 림프샘(임파선)으로부터 유리된 림프구의 수를 감소시킨다. 이럴 때 면역기능이 약화되고 감염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늘어난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의 진단에 따라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일각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항우울제는 수면제, 신경안정제와 달리 습관성이 없다. 향정신병 약과는 달리 정신이 멍해지는 현상도 거의 없다.
유범희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무조건 참다가는 큰 병을 키울 수 있다”며 “특히 술자리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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