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형 재난구조로봇 고속 진화… 10년내 실제 사고현장 투입될듯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가상의 원전화재 상황서 8가지 임무 척척 수행

푸른색 로봇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콘크리트 블록 더미 위에 올라섰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이 험지를 걷는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태양의 도시’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조그만 도시 홈스테드가 나온다. 이곳에 있는 자동차 경기장 ‘홈스테드-마이애미 스피드웨이’에서 이달 20, 21일 ‘DARPA 로보틱스 챌린지(DRC)’ 1차 결선 대회가 열렸다.

○ 로봇공학 한계를 실험한다

로봇이 가상의 원자력발전소 사고현장에서 사람 대신 투입돼 밸브를 잠그고, 소방호스를 연결하는 등 8가지 임무를 수행해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 DRC는 로봇기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KAIST는 이 대회에 재난구조 로봇 ‘DRC휴보’를 들고 나왔다. 대회 둘째 날인 21일에는 가장 어렵다는 자동차 종목 테스트가 있었다.

자동차 종목은 로봇이 사람 대신 운전을 마치면 1점, 차에서 걸어 내리면 1점, 주차구역을 걸어서 빠져나가면 1점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마쳐 3점을 연속해서 받으면 보너스 1점이 더해진다. 하지만 1점이나마 받은 팀은 일본 샤프트와 KAIST, 토르 3개 팀뿐이고, 대부분의 팀은 도전을 포기할 정도로 로봇 기술의 극한을 볼 수 있는 테스트다.

김지철 KAIST 연구원은 “카메라로 앞을 보며 조심해서 운전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로봇이 자기 발로 자동차에서 내려서는 기술을 가진 곳은 없다”고 말했다.

험지 주행과 사다리 오르기도 쉽지 않은 과제로 통했다. 험지 주행에서 만점을 받은 팀은 두 개에 불과했고, 사다리 오르기도 샤프트와 KAIST, 두 팀만 만점을 받았다. 샤프트에서 개발한 로봇 ‘에스원’은 큰 사다리를 계단처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KAIST 팀은 로봇의 긴 팔을 뒤로 돌려 사다리 양쪽 손잡이를 붙잡고 뒷걸음질을 치며 올라가, 사다리를 기어서 올라간 최초의 로봇으로 기록됐다.

그렇지만 DRC휴보는 발목센서 고장으로 문 열기, 장애물 제거, 벽 뚫기 3개 종목에서 0점을 받고 총점 8점에 그쳤다. 한국기업 로보티즈가 개발한 ‘토르 OP’, 일명 똘망을 갖고 참가한 미국 버지니아공대 팀은 문 열기, 소방호스 연결, 밸브 잠그기 등에서 부분점수를 받아 총점 8점으로 KAIST 팀과 동점을 받았다.

○ 로봇 강국 한-미-일 각축의 장

재난구조로봇은 대부분 인간형이다. 사람 대신 일을 하려면 사람과 모습이 비슷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도 인간형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이 참가했다.

일본의 샤프트팀은 6개 종목에서 만점을 받아 총점 32점 중 27점으로 이번 1차 결선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플로리다인간기계인식연구소(IHMC) 팀은 인간형 로봇 ‘애틀러스’로 20점을 받아 2위에 올랐다. 애틀러스는 미국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에서 만든 188cm의 대형 로봇이다.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재난 로봇의 실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이런 속도로 발전한다면 10여 년 안에 실제 재난현장에 로봇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애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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