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8시간을 책상에 앉아 일하는 직장인 박세나 씨(가명·29). 박 씨는 얼마 전 다리가 퉁퉁 붓고 피가 통하지 않아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정맥 혈전증’이었다. 운동 부족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더 큰 원인이 있었다. 2주 전부터 먹기 시작한 사전 피임약이 문제였다. 피임약에 대해 사전 지식이 부족해 박 씨처럼 곤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 우리가 몰랐던 피임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 몸 상태를 고려해 피임약 골라야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사전 경구 피임약은 피임효과가 99%에 달한다. 사후 피임약보다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하고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어 가임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복용하면 화를 부를 수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정맥혈전증이다. 김미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박 씨처럼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피임약을 복용하면 혈전증이 생길 수 있다”며 “운동을 통해 몸 상태를 건강히 유지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속이 메스껍거나 어지러울 수도 있다. 피임약의 주요 성분인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함량이 높을 때 그렇다. 최근에 나온 피임약들은 에스트로겐 함량이 20∼30μg(마이크로그램)으로 전보다 절반 이상 줄어 부작용이 덜하다. 하지만 피임약마다 그 함량이 조금씩 달라 호르몬에 민감한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조금이라도 낮은 약을 복용하는 게 좋다.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약을 구입하기 전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시중에 판매되는 사전 경구 피임약은 총 21가지. 그중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은 10가지다. 경구 피임약의 주요 성분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의 함량이 미세하게 달라 종류가 다양하다. 그래서 효과 역시 조금씩 다르다.
의사들은 “증상에 따라 자신의 몸에 맞는 피임약을 처방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약을 복용한 뒤 몸이 붓는 증상이 생겼다면 이뇨제 작용을 하는 성분이 더 들어간 피임약으로 바꾸는 식이다. 여드름이 많이 나면 여드름이 덜 나게 하는 피임약을 처방받으면 된다.
○ 피임약의 오해와 진실
약을 복용한 뒤 여드름이 생겼다고 호소하는 여성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이준호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피임약은 오히려 여드름을 덜 나게 하는 치료제로 사용된다”며 “약을 복용하면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고 이는 성호르몬 결합 단백질 등에 영향을 줘 여드름을 억제한다”고 말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 일부 여성은 피임약을 먹고 나서 우울증이 생겼다며 병원을 찾지만 이는 약 때문은 아니다. 정윤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체내 호르몬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 월경전증후군 같은 불안정한 정서가 오히려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전피임약도 몸 상태에 따라 맞춤 처방
사전피임약은 피임 목적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처방된다. 호르몬 조절이 가능해 생리불순, 월경과다 등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고생, 여대생들은 중요한 시험을 볼 때나 엠티를 갈 때 생리를 피하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한다. 생리 주기를 임의적으로 바꿀 수 있어서다. 자궁내막증도 예방할 수 있어 다낭성난소증후군 등 부인과 질환을 앓는 여성들이 피임약을 처방받기도 한다.
처방 목적에 따라 복용 방식도 달라진다. 보통은 생리 시작일부터 21일간 약을 복용하고 7일을 쉬지만, 월경전증후군 치료 목적일 땐 다르다. 이때는 24일 약을 복용하고 4일은 효능이 없는 위약을 복용해 체내 호르몬 농도 변화를 줄인다. 자궁출혈이 심한 경우엔 피임약을 하루 4알씩 먹기도 한다. 피임약이 혈액 응고를 돕기 때문이다.
복용 기간 중 흡연은 절대 금물이다. 흡연 여성은 동맥 혈전성 질환 또는 뇌혈관 질환이 일어날 위험성이 높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유방암 가족력이 있거나 혈전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도 다른 피임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35세 이상 여성도 고위험군에 속한다. 결혼시기가 늦춰지면서 복용자들의 연령대도 전보다 높아졌다는 게 의사들의 중론이다. 정 교수는 “경구 피임약 관련 연구 조사 결과 35세 이상 여성은 그보다 어린 여성들보다 부작용 발생 빈도가 2배 이상 높았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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