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운영하고 있는 국가표준시계 KRISS-1. 30만 년에 1초 오차만 허용할 정도로 정밀하다. 표준연은 이 같은 국가표준 시간을 수십 kHz 정도의 주파수에 실어 보내는 ‘장파방송국’ 설립을 추진하고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전기요금이 싼 시간에 세탁기가 자동으로 작동한다면, 도로 위 자동차들의 속도와 거리를 계산해 신호등이 저절로 조절된다면….
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세상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정확한 ‘시간’ 정보다. 스마트 사회로 변해가면서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은 우리 삶에 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각종 스마트 전자기기가 보급되면서 가정 내 가전제품들을 터치 한 번으로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가전’이나 전력 대란을 일으키는 블랙아웃에 대비하기 위한 신개념 전력망 시스템인 ‘스마트그리드’, 수천 개에 달하는 신호등을 통제해 막힘없는 도로를 만들어주는 ‘지능형 교통시스템’ 등도 모두 수백 분의 1초 또는 수천 분의 1초 단위의 정밀한 시간 정보가 필요하다.
정확한 시간 조정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국가표준시간 관리. 이를 위해 전 세계는 일종의 ‘시간 방송국’을 만들어 자국의 표준시각을 전파에 실어 전국 단위로 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4년부터 대전에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표준주파수국에서 FM라디오와 비슷한 ‘5메가헤르츠(MHz)’의 단파에 시간 정보를 실어 24시간 송출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는 곳은 주로 방송국이나 공공기관들이다. 문제는 직진성 강한 단파라는 특징 때문에 산이나 빌딩 등 장애물에 막히면 전파 전달이 잘 되지 않아, 전국으로 송출하기 위해 곳곳에 중개안테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시간 정보를 이용하기 어려울 뿐더러 운용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최근 시간방송 주파수를 AM라디오에서 쓰는 장파로 변경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파는 파장이 길어 정보 전달 거리가 멀고, 지표를 따라 움직이는 지표파의 성격이 강해 산 같은 장애물도 쉽게 피할 수 있으며, 얇은 벽이나 창문도 쉽게 통과한다. 전파 송출하는 곳이 하나만 있어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시간 정보를 수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몇 백 원에 불과한 작은 전파수신 모듈만 있으면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는 손목시계나 자동차용 시계는 물론이고 전자제품 대부분이 국가표준시간에 맞춰 작동이 가능해진다.
장파 시간방송은 1927년 영국에서 시작했으며 2000년을 전후해 일본 등 여러 국가가 장파방식으로 변경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표준시간 정보를 받아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는 전파시계가 지금까지 1억 대 이상 판매됐고 전력관리, 가로등제어 등에도 장파 시간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또 헝가리는 도로정보 서비스에, 스위스는 인터넷 서버용 시간동기화 서비스에 장파 시간방송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표준연구원을 중심으로 장파 시간방송국 설치를 추진 중인데 관련 부처와 논의를 거쳐 몇 년 안에 설치가 완료되면 앞으로 20년간 약 2조40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표준연 기반표준본부 유대혁 시간센터장은 “현재 운영 중인 단파 시간방송국은 서비스를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을 만큼 오래됐고 시간 정보의 활용 다양성 차원에서도 장파 시간방송의 장점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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