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아픈 데는 없는데요. 그런데 많이 아파요.” 모순이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지난해 봄 기자는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난생처음 건강검진을 받았다. 간 초음파를 해주던 젊은 여성 의료진이 말했다. “어머 간이 참 싱싱하네요”라고. 물론 다른 부분도 이상 무(無). 건강한 신체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만날 때마다 “안색이 퀭하다”, “얼굴색이 회색빛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점심때만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잠의 마수를 피하기도 힘들다. 반복된 졸음으로 기자의 생명선인 마감 데드라인을 어길 뻔하기도 수차례. 결국 반복되는 피로감의 원인을 찾고 치료법을 알아보기 위해 4월 중순 인천 가천대 길병원의 ‘만성피로클리닉’을 찾았다. 》 ○ 높은 수은 농도, 과한 긴장, 장 누수 증후군까지
기자의 자초지종을 듣고 난 주치의 서희선 가정의학과 교수는 △중금속·미네랄 균형 검사 △유기산 대사 균형 검사 △항산화능력 검사 △음식 알레르기 검사 △갑상샘(갑상선) 기능 검사 등 총 5가지 검사를 제안했다. 앞선 두 가지 검사는 각각 모발과 소변으로, 나머지 셋은 혈액으로 분석한다. 총 비용은 60만 원 정도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서 교수의 진료실을 찾았다. 그가 꺼내든 결과지는 충격적이었다. 모발로 알아본 중금속 검사에서 기자의 혈액 5cc에 포함된 수은 농도는 2.2ppm으로, 정상치(1.8ppm)보다 20% 이상 높았다. 수은은 신장 손상, 손발 마비, 청력·언어장애를 유발한다. 일본 미나마타 시에서는 대표적인 수은 공해병인 ‘미나마타병’ 때문에 1956년부터 지금까지 2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높은 수은 농도가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틀에 한 번꼴로 활어회를 챙겨 먹는다. 특히 연어회와 참치회를 선호하는데, 서 교수는 이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먹이사슬 상위에 있는 대형 어류인 연어와 참치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중금속을 몸속에 누적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금속 함량이 높은 대형 어류를 과도하게 먹다 보니 높은 수은 농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과도한 긴장감도 만성피로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소변검사에서 아드레날린의 부산물인 ‘바닐만델산’ 농도가 정상치보다 다소 높게 나온 것. 아드레날린은 우리 몸의 긴장, 흥분 상태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많이 분비되면 잠을 못 이루는 부작용이 생긴다. 서 교수는 “기자업무 특성상 긴장감은 늘 달고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휴무 시간만이라도 일 생각을 줄이고, 취미활동을 통해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누수 증후군(Leaky gut syndrome)’ 진단도 받았다. 장 누수 증후군이란 장 점막이 새면서 장 내부에 있던 세균과 독소가 혈액으로 그대로 흡수되는 증상. 이는 우리 몸의 대사(영양분을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기자는 소변검사에서 세균 대사물인 ‘마뇨산염’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는데, 이는 몸속에 세균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 교수는 “신체 대사 효율이 30, 40대 수준으로 크게 떨어져 있다”며 “말 그대로 큰 질병은 없지만 언제 앓아누워도 전혀 놀랍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 식습관, 운동량만 늘려도 체질 개선 가능
몸의 긴장을 안고 사는 다른 직장인도 이번 검사를 받았다면 아마 결과가 비슷할 것이다. 서 교수가 말한 기자가 반드시 고쳐야 할 습관은 식습관이다. 50종 음식물 알레르기 검사 결과에 따르면 기자의 몸은 우유, 밀가루, 달걀 등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유제품, 빵, 분식은 기자가 평소 가장 즐기는 음식이라는 사실. 결국 적어도 집에서 밥을 해 먹을 때만이라도 잡곡밥, 채소류가 중심이 된 옛날식 식단으로 차려 먹으라는 것이 서 교수의 중요한 처방이었다.
운동 처방도 함께 받았다. 적어도 하루에 3분 스트레칭과 30분 걷기만이라도 하라는 소박한 당부. 주말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등산, 자전거타기 등 운동량이 더 많은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서 교수는 “수백만, 수천만 원짜리 영양제를 100알 먹는 것보다 잘못된 생활습관 하나 바꾸는 게 훨씬 낫다”며 “습관 개선이 홀로 힘들다면 전문가 상담과 처방을 통해서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치의 한마디]“콩-살코기로 단백질 보충… 탄수화물 의존증 벗어나야”▼
이철호 기자의 피로감의 가장 큰 원인은 전반적인 영양상태의 불균형이다. 평소 면류, 빵류를 즐기는 ‘저단백 고탄수화물’ 인스턴트 위주의 식습관으로 인해 철분, 마그네슘, 셀레늄 등 미네랄이 부족한 상태. 신체 대사작용을 돕는 미네랄 부족으로 20대인 이 기자의 대사 속도는 30, 40대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 기자처럼 대사 속도가 느린 사람은 특히 초콜릿, 빵 등 단당류 위주의 식단에 빠져들기 쉽다. 몸이 에너지를 내는 대사 과정에서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순서대로 태우는데, 이 속도가 워낙 느리다 보니 즉시 반응할 수 있는 탄수화물에 중독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 기자는 매 끼니 살코기, 익힌 생선, 두부, 콩, 현미 등이 포함된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탄수화물 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몸에서 중금속 ‘수은’이 과다하게 검출된 점이다. 수은은 참치, 연어회를 매주 즐기는 이 기자의 식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금속은 좋은 미네랄의 활동을 방해해서 두통이나 피로감을 유발하고 각종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는 회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겠지만 섭취를 주 2회 이하로 줄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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