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뇌파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예술가를 도왔어요. 그런데 작품을 도와주다 보니 제 실험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김기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센터장은 최근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다. 뇌파로 예술의 가치를 측정할 과학적인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다. 뇌파를 측정해 예술작품에서 얻는 ‘감동의 크기’를 정량화한다는 게 기본 아이디어다. 대덕연구단지에 과학과 예술의 융합 바람이 불고 있다. 몇 년 전 시작된 이 바람은 최근 하나둘 결실을 보고 있다.
김 센터장은 뇌 전문가다. 뇌에서 발생하는 자기 신호를 측정해 뇌 상태를 확인하는 뇌자도 시스템이 그의 전문 영역이다. 그런데 지난해 부부 설치미술가 ‘로와정’(노윤희, 정현석 작가)이 연구원에 입주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들과 만날 일이 많아졌다. 로와정이 작품 소재로 뇌파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도 자연스럽게 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사람이 몰입을 하게 되면 뇌파의 대칭성이 높아지고 사물을 보고 약 0.3초 뒤 그 기억과 관련된 뇌파가 발생한다”며 “실험 기준만 잘 만든다면 감동의 크기를 숫자로 나타내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와정은 이번 주 연구원에서 열린 전시회 ‘아티언스 오픈 랩’에서 뇌파의 무늬를 이용한 ‘456개의 채널’을 선보였다. ‘456’이란 숫자는 뇌자도 측정센서 수(152개)에 작품에 참여한 인원(3명)을 곱한 것이다.
전시회에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등장했다. 미국 컴퓨터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그레이엄 웨이크필드와 한국의 지하루 작가가 공동 작업한 ‘끊임없는 해류’는 가상현실을 이용했다. 센서로 팔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착용하고 화면을 바라보면 형이상학적인 세상에서 헤엄치는 느낌이 들어 관람객들의 큰 인기를 얻었다. 영상은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교수의 복잡계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화했다.
김희원 작가의 시간을 형상화한 ‘누군가의 시계’와 사진을 소재로 삼은 ‘누군가의 창문’도 눈길을 끌었다. 김 작가는 “표준연 광도센터 이동훈 연구원과 대화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일본 영상예술가인 미나미 슌스케(南俊輔)의 ‘필름카메라의 디지털 현시’, 원자시계를 대중에게 알기 쉽게 해설한 김명호 작가의 웹툰도 전시 기간 내내 독특한 과학적 해석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모았다.
전시회를 기획한 이다영 대전문화재단 매니저는 “과학자와 예술가는 극과 극에 있는 분야로 보이지만 높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며 “이 과정에서 예술작품 외에 디자인, 영화, 만화, 새로운 기술 개발 등 다양한 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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