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처럼 100kg가 넘는 초고도 비만은 아니다. 그처럼 스위스제 에멘탈 치즈를 즐겨먹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통풍에 걸리면 아프다는 그곳. 엄지발가락이 시작되는 뼈 부근이다. 40, 50대 중년에게 주로 찾아온다는…. 정말 통풍일까? 통풍이 30대 초반인 기자에게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민망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다. 통풍 의심 증세는 2, 3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 한 달가량을 참다 통풍을 완치한 회사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왼쪽 엄지발가락이 아픈데 선배도 그랬나요? 지난 건강검진 때 통풍과 연관이 깊다는 요산 수치도 높았는데….” 선배의 답은 이랬다. “엄지발가락 아프고 요산 수치 높으면 통풍이 맞을 거야. 너는 통풍에 안 좋다는 맥주도 좋아하잖아. 빨리 병원 가봐.” 》
○ 엄지발가락 아프면 통풍?
국내 통풍 치료의 대가인 한양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전재범 교수와 2일 만났다. 진료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자마자 전 교수는 차분하지만 단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슬리퍼가 아니라 신발 신었네요. 더구나 잘 걷고요. 통풍이 아닐 겁니다.”
설명은 이랬다. 통풍은 조금씩 통증이 심해지는 병이 아니다. 주로 화산이 터지듯 어느 날 갑자기 엄지발가락 뼈(뿌리) 부근이 부어오르며 극심한 통증이 생긴다. 통증이 쓰나미처럼 한 번에 밀려온다는 것.
통풍이 일단 발병하면 신발을 신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다고 했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는 의미에서 통풍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비슷한 맥락. 전 교수는 “유 기자처럼 엄지발가락이 아프다고 통풍이라며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오해”라며 “실제로 나를 찾아오는 환자 10명 중 한두 명은 통풍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잘못된 상식 때문에 전 교수는 해프닝도 많이 겪었다. 자신이 통풍에 걸렸다고 확신하는 환자에게 “통풍은 아닌데,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검사를 좀 해보자”고 하면 “이상한 검사 해서 진료비 나오게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뾰족 구두를 많이 신어서 생기는 무지외반증(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휨)을 통풍으로 오인하고 병원을 찾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한 번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발이 썩어가는 환자가 찾아와 통풍이라고 우겨 실랑이를 한 적도 있다.
전 교수는 통풍이 아니라도 좋으니 검사는 꼭 받으라고 했다. 요산 수치 등 통풍과 연관된 건강지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통상 발가락 부위가 부은 환자가 오면 염증 물질을 주사기로 추출해 편광현미경을 통해 통풍 결정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기자는 염증 부위가 없어 다른 검사를 해야 했다. X선검사, 초음파검사 등 영상장비와 피검사, 소변검사 등을 진행했다.
○ 현대인 요산 수치 관리 필요
6일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예상대로 통풍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산 수치가 8.0mg/dL로 통풍환자(10 이상)보다는 낮지만 정상(7 이하)보다 높게 나왔다. 요산을 방치할 경우 통풍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무증상 고요산혈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요산 수치가 높으면 콩팥 기능이 떨어지고 혈압은 높아진다. 요산 수치가 높을 경우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급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한 번 통풍에 걸린 환자들에게 요산 관리는 필수다. 통풍에 걸렸다가 완치됐더라도 요산 수치가 9 이상일 경우 재발 확률이 70%, 8 이상일 경우는 55%가량 된다. 반면 요산 수치를 6 이하로 유지하면 재발 가능성은 18%대로 떨어진다.
전 교수는 “혈압, 당수치, 콜레스테롤 등에 비해 요산 수치에 대한 인식이 낮은데, 현대인이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지표”라며 “현재 국민건강보험 건강검진에 요산검사가 의무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은데, 선진국처럼 요산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산 수치를 낮추기 위해서는 요산을 만드는 푸린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푸린은 음료수의 액상과당, 고기류, 새우, 술(맥주) 등에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식이요법만으로는 요산 수치를 1∼2 이상 떨어뜨리기 어렵다. 전 교수는 “통풍 환자나 그전 단계인 사람들은 약을 복용하는 것이 요산 수치를 떨어뜨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진료가 끝나갈 즈음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진짜 국내외 언론들의 추측처럼 통풍에 걸렸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 걸까. 전 교수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화면상으로 김정은은 절뚝거리지만 잘 걸었습니다. 진짜 통풍이라면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는 걸을 수조차 없을 겁니다.”
[주치의 한마디]“소주도 요산 늘리는 주범… 절주해야”
유근형 기자는 다행스럽게도 통풍은 아니었다. 발가락 통증은 운동을 하다 생긴 인대 또는 관절의 염증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 요산 수치가 높아 방치할 경우 다양한 질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산 수치가 높으면 통풍 위험만 높아지는 건 아니다.
혈압이 올라가고 신장 기능도 떨어져 향후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더 큰 문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 10잔 이상 마시는 유기자의 폭음 습관이다. 맥주와 소주를 함께 먹는 것도 문제다.
혹자는 통풍 환자는 맥주만 안 먹으면 된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소주 등 증류주에는 요산을 만드는 푸린이 맥주보다 상대적으로 적지만 요산은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도 생성된다.
주종과 관계없이 술은 요산을 늘리는 주범인 셈. 이번 진료가 술을 줄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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