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 될지, 강도 될지 뇌 보면 다 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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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미래 예측하는 뇌 영상 기술
‘8년후 난독증’ 예측 정확성 81%
수학 천재-둔재 여부도 미리 판독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뇌의 능력을 극대화해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을 모티브로 삼아 뇌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뇌의 능력을 극대화해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을 모티브로 삼아 뇌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2030년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한 A 씨는 큰 걱정에 빠졌다. 최신 뇌 영상 기술을 통해 아기의 뇌를 검사한 결과, 영어를 한창 배울 나이인 12세가 됐을 때 외국어 능력이 하위 30%에 그치고, 수학 실력 또한 평범해 상위 40% 이상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약물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 성인이 됐을 때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분노 조절 능력이 떨어져 범죄자로 성장할 가능성도 다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 내용은 세계적인 뇌 과학자 존 개브리엘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신경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 ‘뉴런’ 7일자에 밝힌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개브리엘리 교수는 “뇌 영상 기술이 발달하면서 뇌를 관찰해 미래의 건강상태는 물론이고 학습능력, 범죄 가능성까지 예측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밝혔다.

난독증에 관여하는 뇌 부위는 전두엽 하이랑(붉은색)으로 이 부위가 활성화될수록 난독증을 치료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출처 뉴런
난독증에 관여하는 뇌 부위는 전두엽 하이랑(붉은색)으로 이 부위가 활성화될수록 난독증을 치료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출처 뉴런
○ 난독증에 수학 실력도 예측

실제로 미국 루이빌대 연구팀은 생후 36시간 이내 신생아의 뇌파를 측정해 8년 뒤 이 아기가 난독증을 겪을지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해 인지과학 저널인 ‘뇌와 언어’에 발표했다. 난독증은 음운과 음절을 제대로 분해해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어나는 증상으로 환경적 요인 외에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난독증 부모를 둔 신생아 48명으로 실험 대상을 제한했다.

연구팀은 주변 사람의 말이 들릴 때 신생아 뇌에서 음운과 음절에 반응하는 뇌파를 각각 측정해 파형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부 아기는 말소리를 들어도 전두엽에서 나타나는 뇌파가 저조했다. 이 아기들은 훗날 실제로 난독증을 앓았고, 연구진의 예측 정확도는 81%를 기록했다.

수학 실력은 기억과 학습 능력을 관장하는 해마의 회질(노란색) 용적과 관련이 있다. 실험 결과 회질이 클수록 수학 실력이 더 많이 향상됐다. 사진 출처 뉴런
수학 실력은 기억과 학습 능력을 관장하는 해마의 회질(노란색) 용적과 관련이 있다. 실험 결과 회질이 클수록 수학 실력이 더 많이 향상됐다. 사진 출처 뉴런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팀은 6∼16세 학생 46명을 대상으로 수학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일종의 시험을 보게 하고, 그동안 이들의 뇌가 얼마나 활성화되는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했다. 촬영 부위는 숫자의 표현 능력과 연산 과정의 기억을 관장하는 왼쪽 마루엽(두정엽) 속고랑이었다.

연구팀은 2년 뒤 동일한 실험을 진행하고 마루엽 속고랑 활성 정도와 학생들의 수학 실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2년 뒤 수학 실력이 하위 20%에 든 학생 9명 가운데 5명을 정확히 예측했다. 토르켈 클링베리 교수는 “fMRI 없이 수학 시험만으로 예측했을 때는 2명밖에 못 맞혔다”면서 “뇌 영상 분석을 통해 정확도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옥스퍼드대 출판사가 발행하는 뇌과학 저널인 ‘대뇌피질’에 실렸다.

○ 범죄 가능성 예측하는 ‘뉴로마커’

미국 뉴멕시코대 연구팀은 출소자 96명을 대상으로 행동과 심리에 관한 설문에 응답하도록 한 뒤 그동안 이들의 뇌를 fMRI로 촬영했다. 그 후 4년 안에 범죄를 저지르고 재수감된 사람들의 fMRI 영상을 비교하자 공통점이 나타났다. 충동 조절과 감정에 관여하는 전대상 피질의 활동이 저조할수록 재범률이 높게 나타난 것. 연구팀은 이 결과를 2013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뇌에서 인지 능력이나 사회성, 질병 등과 관련된 부위는 ‘뉴로마커’로 불린다. 정용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뉴로마커는 특정 현상과 뇌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이지 인과관계를 밝힌 게 아니다”면서 “뉴로마커가 오용될 경우 초등학생의 뇌 영상을 기준으로 문·이과를 나누고 우열반을 나누는 등 불완전한 미래의 정보로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미래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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