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완화(호스피스)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힘든 과정을 감수하며 적극적 치료를 받기보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다. 그래도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완화병동 하면 왠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은 선입견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28일 찾아간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별관 2층 완화병동의 문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 유족들의 사후 정신관리까지
하지만 막상 들어선 완화병동은 은은한 음악소리와 함께 환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입원실 앞에는 ‘로즈메리’ ‘재스민’ ‘은방울’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고, 임종을 맞이하는 방의 이름은 ‘은하수’였다. 은하수 방의 화려한 꽃무늬 벽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이 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서비스는 더 따듯하다. 사별한 유족들에 대한 사후관리 서비스 때문이다. 2013년 문동환(가명) 씨는 이 병원에서 폐암으로 투병했던 부인과 사별했다. 문 씨는 부인이 투병하는 동안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지만, 사별 뒤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고 식욕을 잃어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
김준형 병동센터장, 간호사 6명, 의료사회복지사 1명으로 구성된 완화병동 의료진은 문 씨에게 전화, 편지를 수시로 보내고 방문해 위로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명절, 생일에도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문 씨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 로비에서 개인전을 열게 했다. 문 씨는 아픔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초등학생 아들과 6세 딸을 남기고 38세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주명애(가명) 씨 가족도 마찬가지다. 의료진은 수시로 전화해 아이들과 남편의 정신건강을 챙겼다.
이 병원은 호스피스 병동 운영으로 지난해 14억 원의 적자를 냈다. 8개 병실에 3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12명만 받았기 때문이다. 수용 인원을 줄이고 남은 공간엔 환자들의 내밀한 개인사나 정신관리를 해주는 상담실, 보호자가 쉴 수 있는 가족실을 만들었다. 다른 병원의 6인실 규모인 병실은 네 명이 쓴다. 김연미 의료사회복지사는 “완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공간의 크기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병원 내 도서관은 지역 주민에게 24시간 개방
공공의료기관인 파주병원의 다른 자랑거리는 본관 3층의 ‘혜윰도서관’. 혜윰은 생각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병원 의료진은 핀란드에서는 국가가 병원 내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고, 덴마크는 병원 인가 때 도서관 설치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보며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0년 도서관 이름 공모를 시작해 그해 11월 설립기금 마련 지역 바자회를 열어 380여만 원을 모았다. 의료진은 지인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책 6500여 권을 모태로 2012년 도서관을 개관했다.
도서관은 병원을 찾은 환자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명소가 됐다. 지금까지 지역 주민 1만800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고, 지난해 대출된 도서가 1300여 권에 이른다. 24시간 개방되는 도서관의 운영도 지역 주민의 몫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사서를 담당하며 대출도 대장에 책이름을 적는 것 이외에 자율이다. 자원봉사자들은 도서관에서 요일별로 구연동화, 색칠공부, 조형물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도서관 설립을 주도한 송대훈 내과과장은 “병원은 아픈 곳을 고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라며 “병원을 찾았을 때 느끼는 막연한 거부감을 없애는 데 도서관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병원 의료진은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오후 2시간 동안 외국인 무료 진료를 진행한다.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국내서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불법 체류자들이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부산에서도 찾아오며 매달 100여 명이 무료 진료를 받는다.
김현승 파주병원장은 “완화병동과 외국인 무료진료로 적자가 발생하지만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공공기관 평가에서도 이런 부분을 적극 고려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선정위원 한마디 “사별가족 관리, 매우 인상적인 서비스”▼
착한 병원 선정 위원들은 파주병원 완화병동의 사별
가족에 대한 관리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병원에 도서관을 도입해 환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것도 평가할 부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장동민 전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사별가족 관리는 매우 인상적인 서비스”라며 “완화병동의 12억 원의 ‘착한
적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국가 보조나 다른 보전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영학석사(MBA)
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배지수 위원도 “사별가족 관리는 저희 병원도 도입해 보고 싶은 좋은 아이디어 같다”며 “도서관 운영,
외국인 무료 진료는 (다른 병원들은 도입하기 어려운)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 같은 느낌이 든다. 국가적 지원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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