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예전 얘기다. 인텔이 노트북용 플랫폼 '센트리노'를 공개한 바로 그 때, '팬리스(Fanless)' 노트북이 시장에서 한창 화두였다. 팬리스 노트북이란 프로세서나 그래픽 프로세서의 열을 식히기 위한 방열팬을 제거하고, 대신 열을 본체에 골고루 전달하는 형태의 제품이다. 방열팬이 없는 만큼 제품을 사용할 때 소음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아예 없진 않았다. HDD에서 소음이 발생했으니까). 덕분에 도서관처럼 정숙해야 하는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각광받았다.
<삼성 노트북9 2015 에디션>
하지만 팬리스 노트북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방열 효율이 매우 떨어져 조금만 사용해도 프로세서 성능이 급격히 저하됐다. 도저히 노트북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정숙함에 열광해 팬리스 노트북을 구매한 사용자들은 이내 실망했다. 그렇게 팬리스 노트북은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랬던 팬리스 노트북이 저전력/저발열 프로세서 '인텔 아톰'이 출시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아톰은 적어도 저발열이라는 점 하나만큼은 확실히 지켰다. 방열팬이 없어도 성능 저하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아톰을 활용한 팬리스 노트북이 시장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기조는 현재 윈도8 태블릿PC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톰은 어디까지나 아톰이다. 고성능 프로세서인 '인텔 코어 시리즈'에 비해 성능이 많이 부족했다. 웹 서핑이나 문서 작성 등은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지만, 포토샵이나 동영상 인코딩처럼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작업은 힘에 부쳤다. 고급 노트북에 탑재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성능이다.
팬리스의 정숙함과 코어 시리즈의 높은 성능. 둘을 동시에 갖춘 노트북은 없을까? 예전에는 허황된 꿈으로 여겨졌지만, 지속적인 프로세서 생산 공정 개선으로 발열이 줄어든 덕분에 이제는 가능하다. 4세대 인텔 코어 i 프로세서 '하스웰'부터 저전력/저발열 모델인 Y 시리즈가 추가됐기 때문. Y 시리즈는 팬리스 노트북과 고사양 윈도8 태블릿PC를 목표로 설계된 프로세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분명 Y 시리즈는 팬리스를 목표로 설계된 제품이지만, 정작 Y 시리즈가 탑재된 제품 가운데 팬리스 노트북은 극히 드물었다. 방열팬을 탑재한 일반 노트북이 대부분이었다. 팬리스 노트북을 제작하려면 열을 본체에 골고루 전달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본체가 방열판의 역할을 하는 셈. 때문에 설계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회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제조사 입장에서도 할말은 있다. Y 시리즈가 애당초 팬리스 노트북에 어울리는 모델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하스웰 Y 시리즈는 11.5 와트(W)의 전력을 소모한다(TDP 기준). 3~5W 정도의 전력을 요구하는 아톰에 비해 2배 이상 전력 소모가 많은 것. 아톰을 탑재한 팬리스 노트북과 태블릿PC도 ARM 프로세서보다 발열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하물며 하스웰 Y 시리즈는 어떻겠는가. 방열팬을 아예 제거하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라는 얘기다.
Y 시리즈에 대한 제조사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며 인텔은 절치부심했다. 22나노에서 14나노로 생산 공정을 개선하고 설계를 최적화해, 4.5W의 전력만 소모하는 '코어 M 프로세서'를 지난해 하반기 시장에 공개했다. 고성능 프로세서인 코어 시리즈이면서 전력 소모와 발열이 아톰이나 고성능 ARM 프로세서와 비슷한 프로세서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5세대 인텔 코어 i 프로세서 '브로드웰'에는 M(일반 노트북용 프로세서), U(저전력 프로세서, 울트라북용) 시리즈만 존재하고 Y 시리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Y 시리즈가 코어 M 프로세서로 이름을 변경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코어 M 프로세서가 출시됨에 따라 제조사 역시 인텔의 의도에 화답하고 있다. 코어 M 프로세서를 탑재해 팬리스와 고성능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시장에 하나둘씩 선보이고 있다. 그 첫 번째 타자가 삼성전자의 고급 노트북 '삼성 노트북9 2015 에디션(이하 노트북9)'이다. (과거 삼성전자의 노트북 브랜드는 아티브였지만, 지금은 브랜드 통합의 일환으로 아티브 브랜드를 폐지하고 3, 5, 7, 9 같은 숫자만으로 노트북을 구분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 3은 보급, 5는 중급, 7은 게이밍 및 특화, 9는 고급 노트북임을 의미한다.)
노트북9은 팬리스 노트북이다. 저장장치도 HDD 대신 SSD(256GB)를 사용한다. 제품 속에 단 하나의 모터도 없다는 뜻이다(제로 스핀들).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를 제외하면, 제품을 사용할 때 소음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참된 무소음 노트북이다. 집, 직장, 카페 등 조금 소란스러워도 되는 곳뿐만 아니라 도서관, 스튜디오 등 정숙해야 하는 곳에서 사용해도 된다.
견고하고 가벼운 본체가 인상적
노트북9은 고급 노트북이다. 화면 크기는 12.2인치(30.9cm)이지만, 해상도는 QHD(2,560x1,600)에 이른다. 화면의 선명함이 247ppi에 이른다는 뜻이다. 어지간한 태블릿PC보다 훨씬 선명하다. 본체는 경첩 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알루미늄(금속) 재질로 구성되어 있어 단단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게는 1kg이 채 되지 않는다. 940g으로 측정됐다. (공식 스펙 표기에는 950g으로 적혀있는데, 실제로 측정해보니 10g 더 가벼웠다) 두께는 11.8mm다. 연필과 비슷한 수준의 두께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휴대할 수 있다.
노트북9은 삼성전자의 노트북 설계 역량을 하나로 모은 제품이다. 팬리스로 설계됐음에도 불구하고 열을 제품 하단에 골고루 전달해 효율적으로 열을 식힌다. 금속 재질임에도 불구하고 와이파이가 끊어지는 현상도 없고, 팜레스트에서 정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화면은 깜짝 놀랄 정도로 밝고 선명하다. 평균 350니트, 최대 700니트의 광시야각 PLS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다. 노트북은 보통 250니트, 태블릿PC는 350니트 정도의 밝기를 보여준다. 언제나 전원을 연결해서 사용하는 모니터조차 대부분 450니트 정도가 밝기의 한계다. 노트북9은 사용자가 원한다면 모니터보다 더 밝은 화면에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종합해 평가하자면 노트북9은 삼성전자의 플래그십(기함, 최고급) 노트북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제품이다. 이제 사용자들이 노트북9에 궁금해할 점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발열 탓에 프로세서나 그래픽 프로세서의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을 스로틀링(throttling)이라고 부른다. 팬리스 노트북이 사용자에게 외면 받은 것도 스로틀링 때문이다. 열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오래 사용하면 성능이 급격히 저하됐다.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제품을 비싼 돈 내고 사용할 사람은 없다.
노트북9과 코어 M 프로세서는 스로틀링으로부터 자유로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로틀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노트북9에 탑재된 코어 M-5Y10c 프로세서는 평균 800MHz 최대 2GHz의 속도로 동작한다. 스로틀링을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9으로 동영상 인코딩을 쉬지 않고 진행했다. 그 결과 4시간이 넘으면 프로세서 속도가 800MHz를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을 4시간 이상 혹사해야 프로세서 성능이 제한되는 것이다. 그 전에는 언제나 최대 성능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동영상 인코딩을 4시간 동안 진행할 일은 없을 것이니 노트북9 사용자가 스로틀링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웹 서핑, 문서 작성, 동영상 감상 등 일반적인 작업을 할 때에는 스로틀링이 발생하지 않았다. 발열도 매우 적었다. 아래쪽을 기준으로 왼쪽 하단이 조금 뜨거워질뿐 나머지 부분은 미지근한 수준이었다. 그 열기도 사용자의 손이 위치한 팜레스트까지 전해지진 않았다. 열 때문에 사용자가 불쾌할 일은 매우 드물 것이다.
노트북9에는 용량 4,700mAh의 일체형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다. 배터리 사용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화면 밝기를 중간 정도로 맞추고 HD 해상도의 MP4 영상을 계속 재생했다. 그 결과 3시간 15분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배터리 사용 시간이 적은 것 같아 실험이 잘못됐는지 확인했다. 노트북9은 배터리만으로 사용할 때 삼성 최적 모드(성능 우선)와 절전 모드(절전 우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3시간 15분은 삼성 최적 모드로 사용할 때 나온 결과다. 같은 조건으로 절전 모드로 변경한 후 다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5시간 30분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 절전 모드로 맞춘 후 웹 서핑이나 문서 작성만 할 경우 6~7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 오랫 동안 사용하길 원하면 화면 밝기를 30% 수준으로 낮추는 편이 좋다. 화면이 워낙 밝다보니 30% 수준으로 낮춰도 제품 사용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한 번 충전으로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지만, 혹시라도 배터리 충전이 다 떨어지면 전원 어댑터를 연결하면 된다. 노트북9의 전원 어댑터는 휴대하기 쉽도록 매우 작고 가볍게 설계되어 있다. 크기는 스마트폰 충전 어댑터와 대동소이하고, 무게도 170g에 불과하다. 본체와 전원 어댑터를 함께 휴대해도 무게가 1.1kg 수준이니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다.
성능과 읽기/쓰기 속도는 기대 이상
노트북9과 코어 M-5Y10c 프로세서의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 기크벤치3를 활용해 싱글코어의 성능과 모든 코어(참고로 M-5Y10c 프로세서는 듀얼 코어다)의 성능을 확인했다. 그 결과 싱글 코어는 2,038점, 모든 코어는 4,203점으로 측정됐다. 점수만 봐서는 감이 오질 않으니 비슷한 성능을 갖춘 제품을 찾아봤다. 그 결과 코어 M-5Y10c 프로세서는 인텔 코어 i5-4200U(하스웰 저전력), 인텔 코어 i7-720QM(린필드 쿼드코어 모바일), 인텔 코어2 쿼드 Q8200(코어 시리즈 쿼드코어 데스크톱)과 성능이 대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톰 베이트레일이나 ARM 프로세서보다 월등하다. 웹 서핑, 문서 작성, 동영상 감상뿐만 아니라 포토샵, 동영상 인코딩 등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도 쾌적하게 실행할 수 있다. 팬리스를 목표로 저전력/저발열 설계된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능이다.
저장장치는 '삼성 PM851 mSATA SSD 256GB'를 탑재하고 있다. 성능은 준수하다. 읽기 속도 502MB/s, 쓰기 속도 254MB/s, 4K 임의 읽기 23.8MB/s, 4K 임의 쓰기 58.7MB/s로 나타났다. 10GB 용량의 파일을 기록하는데 4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 시중의 고급 SSD와 대동소이한 성능이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부팅이 완료될 때까지 불과 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256GB 가운데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저장 공간은 224GB다. 윈도 운영체제 복구 영역이 20GB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사용자는 이 영역에 접근할 수 없다.
메모리는 8GB이며, 메인보드에 일체화되어 있는 온보드 타입이라 교체는 불가능하다. 구매할 때 참고할 것.
노트북9의 화면은 매우 밝고 선명하다. 화면 밝기를 최대로 올리면 실내에서는 눈부셔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다. 화면 해상도는 QHD로 매우 높지만, 화면 스케일링 비율이 150%로 기본 설정되어 있어서 사용자는 풀HD(1,920x1,080) 해상도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이 마저도 글씨와 이미지가 작게 느껴진다면 화면 스케일링 비율을 200%로 확대해서 사용하면 된다.
키보드는 여러 브랜드에서 널리 사용되는 아이솔레이트(키 사이의 간격을 메워 이물질의 유입이나 손톱이 끼는 현상을 막은 펜타그래프 키보드) 타입이다. 여기에 키 가운데를 움푹하게 파서 키를 눌르는 감각을 좋게 만들었다. 보급형 노트북에서 종종 나타나는 '키보드를 세게 누르면 본체가 들썩이는 현상'도 전혀 없다. 오른쪽 시프트 키가 큼직한 점은 국산 노트북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인 만큼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게임 실행은 제법... 하지만 추천은 안해
노트북9의 그래픽 프로세서는 인텔 아이리스 5300(HD 그래픽스)이다. 코어 M 프로세서에 내장되어 있는 통합 그래픽 프로세서다. 성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그래픽 프로세서의 성능을 측정하는 3D 마크 2013을 실행해본 결과 640점으로 측정됐다. 인텔 HD 그래픽스 4000, 엔비디아 지포스 GT 420M과 유사한 성능이다. 고사양 게임은 어림도 없고, 몇 가지 캐주얼 게임만 원활하게 실행할 수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HD 해상도(1,280x720)로 실행하면 40~50프레임 내외로 나와 즐기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실행하면 프로세서의 성능이 혹사되는 만큼 스로틀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꼭 게임을 즐겨야 겠다'는 사용자라면 노트북9보다 데스크톱이나 게이밍 노트북을 알아보는 편이 좋겠다.
휴대성을 중시한 제품인 만큼 확장성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USB 3.0 단자가 있다. 왼쪽 USB 3.0 단자는 제품을 꺼놔도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충전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한다. 왼쪽에는 마이크/스피커 겸용 단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미니 HDMI, 마이크로 SD 카드 슬롯이 준비돼 있다. 구형 프로젝터나 모니터에 제품을 연결하려면 D-SUB 변환 젠더를 이용해야 한다.
제품 색상은 남색(삼성전자의 공식적인 주장에 따르면 검은색)으로 고급스럽지만, 지문이 너무 심하게 묻는 문제가 존재한다. 게다가 마른 수건으로는 잘 닦이지도 않는다. 과거 아티브북9 시절부터 존재하던 문제였는데, 사용자들이 꾸준히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문 방지 코팅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왜 안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노트북9은 2월 중반부터 정식 판매를 시작했다. 출고가는 172만 원이다. 인터넷을 뒤지거나 발품을 팔면 좀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 리뷰를 진행한 모델은 정식 판매 모델이 아닌 공장에서 막 나온 엔지니어링 샘플입니다. 실제 판매 모델과 성능이나 디자인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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