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힉스를 찾아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빅뱅(대폭발) 직후를 확인했다면,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은 빅뱅 이후 3분 정도 지난 시점의 우주를 재현하는 게 목표입니다.”
3일 오전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만난 정순찬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사진)은 “가속기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 우리가 세계 물리학계와 제대로 ‘한판’ 붙어볼 수 있는 최첨단 장비가 바로 라온”이라고 밝혔다.
그는 7개월가량 공석이던 단장 자리에 1월 말 선임됐다. 1994년 일본 도쿄대 조교수를 거쳐 1997년부터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 교수로 지내면서 일본 내에서 핵물리 전문가로 잔뼈가 굵었다.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책상에서 A4용지 한 장을 꺼냈다. 연필로 직접 그린 가속기 설계도였다. 영어와 한글을 뒤섞은 설명도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설을 준비하던 2009년 자문위원을 맡고 있었다”면서 “당시 국내 전문가들과 수차례 논의를 거치면서 중이온가속기의 이상적인 형태를 그렸는데, 그게 결국 라온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라온은 주요 장치의 설계를 마치고 시제품을 제작해 성능시험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라온의 핵심 장치인 길이 1m가량의 원통형 가속관을 자체 제작해 캐나다 국립입자핵물리연구소(TRIUMF)에서 성능 검증까지 끝냈다. 가속관은 중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진공관으로 라온에는 450여 개가 필요하다.
정 단장은 “라온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동위원소를 만들어 낸다”면서 “이들을 통해 별의 진화와 우주의 기원을 밝히고 암 치료나 생명공학 연구 등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온은 2021년 완공 예정이다. 동시대 가속기 가운데 가속에너지나 희귀 동위원소 빔 에너지 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라온과 ‘선의의 경쟁자’ 격인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중이온가속기 ‘에프립(FRIB)’은 2020년 완공된다. 정 단장은 “라온 운영을 시작하면 세계 물리학계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라며 “운영 후 2∼3년 안에 첫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