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紅燈)’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물들이고 있다. 이러다가 ‘섹스네트워크서비스(SNS)’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의심된다면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실행시켜 보시길. 검색창에 해시태그(단어 앞에 ‘#’을 붙여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로 ‘섹’이라는 한 글자만 입력해도 상황 파악이 끝난다. 남녀를 불문하고 옷을 벗어젖힌 사진부터 성기 노출 사진, 성행위 동영상까지 그야말로 ‘음란의 바다’가 펼쳐진다. 사진과 동영상이 이 정도이니 글로 쓰인 표현은 상상 그 이상이다.
SNS에 자신의 음란 사진 올려
음란물은 과거에도 늘 문제였지만 현재 SNS에서 퍼지고 있는 음란물의 양상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음란 사진과 동영상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마치 자랑하듯 자신의 성기나 가슴 사진 등을 올린다. 특히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인스타그램(사진과 동영상 공유 SNS)이 인기를 끌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2010년 등장한 인스타그램은 사진이 중심이다. 글보다 사진을 선호하는 10대와 20대의 입맛에 딱 맞는 SNS인 셈이다. 인스타그램은 2012년 페이스북이 인수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대됐다. 이 무렵 한국에서도 급속도로 퍼졌다. 이때부터 자신의 음란 사진을 스스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현상도 증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음란물 게시로 제재를 받은 SNS는 2012년 273개에서 2013년 4741개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만7858개까지 증가했다. 불과 2년 만에 65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음란한 SNS에 대해 제재를 결정하는 통신심의소위원회는 매주 2회 열린다. 3월 31일 열린 이 회의에서 제재를 받은 SNS는 738개에 이르렀다. 이렇게 매주 평균 1500여 개의 SNS가 폐쇄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은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거나 음란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일탈족’이라고 부른다. 남자는 ‘일탈남’, 여자는 ‘일탈녀’다. ‘일탈족’들은 대부분 얼굴은 가리고 자신의 신체 부위만 찍어서 올린다. 최근 들어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도 늘고 있다. 또 공개적으로 성관계 상대를 찾기도 한다.
문제는 이용자가 대부분 청소년인 인스타그램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쉽게 음란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문제의식 없이 스스로 일탈족이 되는 청소년들도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유해 사이트를 열심히 차단하고 있지만 정작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SNS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일탈족’ 증가
SNS에서 청소년 일탈족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혜정 음란물대응반장은 “SNS는 e메일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데다 별도 성인 인증 절차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SNS의 편리성에 청소년들의 ‘과시욕’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관심욕’ 등이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촉한 몇몇 청소년 일탈족은 “내 계정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 “그냥 팔로어 수 늘리려고 한다” “SNS에서 ‘좋아요’ 수가 늘어나면 좋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생도 일탈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지난해 10월 SNS를 통해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적발한 117명 가운데 초등학생이 33명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경찰에서 “팔로어 수를 늘리기 위해 신체 사진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청소년 일탈족 확대에는 SNS의 편리한 해시태그 기능도 한몫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를 이용하면 관심 있는 내용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음란물을 쉽게 검색해 모아주는 역기능도 있다. 해시태그 뒤에 ‘섹스’ ‘섹스타’ ‘일탈’ 등 음란물과 관련된 단어를 입력하면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모든 음란물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해시태그 기능은 인스타그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의 강력한 해시태그 기능과 사진이 중심인 특성이 만나 음란물 유통의 한 축이 된 셈이다.
조건만남으로 이어져
청소년들이 SNS를 통해 음란한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거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심각한 현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성매매 같은 불법적 요소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SNS가 청소년의 음란물 판매처, 원조교제의 창구로 악용되는 것이다.
실제 SNS에서는 스스로를 ‘여중생’ 또는 ‘여고생’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을 찍은 음란 사진과 동영상을 판매하는 여학생들이 있다. 일부는 자신이 실제 청소년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 등을 올리기도 한다. 이들은 현금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상품권 등을 요구했다. 일부는 “문상10, 오프 가능”(문화상품권 10만 원을 주면 별도 만남이 가능하다는 뜻) 등의 조건 만남 광고도 게시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가 음란 웹사이트의 홍보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해외에 서버를 둔 음란 웹사이트 ‘소라넷’이 대표적이다. 소라넷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공공의 적’으로 보는 사이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소라넷 서버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서버를 폐쇄하지는 못하고 홈페이지를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접근이 차단되면 다음 날 새로운 주소로 다시 개설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때 SNS는 소라넷의 새로운 주소를 알리는 홍보 수단이 되는 것이다. 정 반장은 “음란 사이트를 차단하면 이용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소라넷은 SNS를 통해 새 주소를 홍보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줄지 않고 폐쇄에 대해 불편해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하지만 특별한 대책은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음란, 성매매 관련 SNS를 차단하기 위해 전담 모니터링 요원을 두고 있지만 66명에 불과하다. 예산 부족 때문이다. 모니터링 요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도 70만 원이 넘지 않는다. 국내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인구가 1400만 명(1개월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용자들이 인터넷에서 스스로 음란물을 차단할 수 있도록 ‘그린 아이넷(i-Net)’이라는 음란물 차단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린아이넷은 웹사이트만 차단할 수 있을 뿐 음란 SNS는 걸러내지 못하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SNS를 통한 성매매·음란 정보 노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커지자 ‘음란물전담반(TF)’을 구성하고 대대적인 점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SNS 운영 회사들이 나서 주면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도 있지만 기업들은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은 잭 도시 트위터 회장은 “트위터상에서 음란물은 불법 콘텐츠”라며 “이를 관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 관련 게시물을 줄이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음란물을 제한하면 접속자 수나 접속 횟수가 줄어든다. 트위터로서는 스스로 영업의 손발을 묶는 셈이다. 트위터 가입자가 9억 명을 넘어서고 유통되는 음란물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모니터링 전담팀은 미국 본사에만 있다. 한국에는 음란물 모니터링 담당 인력이 없다.
인스타그램의 경우도 검색란에 해시태그와 함께 영문으로 특정 성(性)적 단어를 검색하면 검색 결과가 보이지 않는 등 자체 필터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로는 이러한 검색 필터링 기능이 없다.
현재 국내에서 SNS에서의 음란물 확산에 대해 정치권과 사회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추가 대책만 논의되고 있을 뿐 아직까지 확실한 제재 방침은 정해지지 않고 있다. 무분별하게 범람하는 음란물의 유통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하루빨리 수립되지 않는다면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성(性)진국’(선진국을 빗댄 말) 혹은 ‘음란물 천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