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의술]임신8개월 암환자 극적으로 치료…변석수 분당서울대병원 과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0일 03시 00분


태아포기 기로에 선 방광암 환자…출산후 수술, 산모-아이 다 살려

변석수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장은 “방광암은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많이 발생한다”며 “고령 남성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면 방광암 검사를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변석수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장은 “방광암은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많이 발생한다”며 “고령 남성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면 방광암 검사를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변석수 비뇨기과장(48)은 2011년 2월 1일을 잊을 수 없다. 이날 대구에서 온 성지영(가명·당시 43세) 씨는 임신 8개월이었는데, 지역 병원에서 방광암 진단을 받고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변 교수를 찾아왔다.

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변 교수는 “당시 성 씨의 눈에는 살고 싶은 간절함, 아이도 살려야 한다는 모성애와 함께 임신 상태에서는 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검사를 시작했지만 임신부에게는 제약이 많았다. 방광암 진단에는 컴퓨터단층촬영(CT) 이 필수인데, CT는 태아 건강에 치명적인 다량의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쓸 수 없었다. 그 대신 내시경을 이용했다. 변 교수는 “당시 CT 없이 암을 진단하는 것은 어두운 동굴 속을 손으로 더듬으며 뭔가를 찾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내시경으로 살펴본 성 씨의 암은 다행히 초기 단계로 보였다. 하지만 암의 성격이 좋지 않아 보였다. 방광암의 90% 이상은 상피암인데, 성 씨는 체내 물질을 분비하는 부위에 생기는 샘암(선암)으로 보였다. 샘암은 유방, 위, 대장처럼 체내 물질이 나오는 장기에 흔히 생기는 암이다. 별다른 분비 기능이 없는 방광에는 전체의 2%에 불과한 드문 암이었다. 상피암에 비해 샘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고 치료도 매우 어렵다. 다행히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다른 장기에 전이된 흔적은 없었다.

환자 상황을 고려하면 아이를 포기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아이를 원했다. 변 교수도 두 사람 모두 살리고 싶었다. 변 교수는 한 달을 기다려 아이가 9개월을 채우게 되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암 환자에게, 더구나 샘암 환자에게 한 달은 암이 치명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행 속도가 빠른 암이라서 기다림은 도박일 수밖에 없었다.

“진단 뒤 일주일 동안 밤새 고민을 했어요. 의사가 된 뒤 이처럼 어려운 결정의 순간은 처음이었어요.”

변 교수는 병변이 크지 않고 다른 장기에 전이되지 않은 상태를 볼 때 아이와 산모를 모두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산부인과, 영상의학과의 의견도 변 교수의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한 달을 기다려 출산 예정일보다 3주 앞서 제왕절개로 아이가 태어났다. 변 교수는 바로 뒤이어 CT 검사를 했고 이를 통해 성 씨의 암이 샘암이며 초기라고 확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광 제거 여부가 고민이었다. 암이 방광의 밑이나 옆 부분에 발생하면 예후가 안 좋아 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광을 제거하면 소장을 잘라내 새 방광을 만들어야 했다. 또 평생 소변 주머니를 차고 생활해야 해 환자의 불편이 크다. 그는 “전공의 시절, 30대 여성 방광암 환자가 평생 소변 주머니를 차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성 씨의 방광을 보존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발생 부위는 방광의 윗부분이라 방광의 일부만 도려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현재 성 씨와 아이는 모두 건강하다. 성 씨는 요즘 1년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하러 내원한다. 성 씨가 찾아와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할 때마다 변 교수는 큰 보람을 느낀다.

변 교수는 1년에 전립샘(전립선), 신장 등 비뇨기과 암 수술을 300건 이상 집도한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재직한 12년 동안 암 수술 건수가 3000건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성 씨 같은 환자는 평생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경우라고 말한다.

“젊은 여성이 방광암 중 샘암에 걸리는 경우가, 그것도 임신 중 발생한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2년 전 신장암에 걸린 30대 초반 임신 중기 여성은 아이와 산모 모두 살리지 못했어요. 성 씨의 경우는 의료진의 적절한 판단과 하늘의 도움으로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습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변석수#분당서울대병원#과장#성지영#방광암#임신부#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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